한국 과학자 살아있는 세포로 로봇 만들다

입력 2016-07-08 03:00  

세계 최초 쥐 심근세포 이용한 '로봇 가오리' 개발…생체형 인공심장 기대

미국 하버드대 박성진 연구원 주도
빛따라 속도·방향 바꾸고 물속 포도당이 에너지원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표지 게재…"생체모방·광유전학 결합된 역작"



[ 박근태 기자 ] 한국 과학자들이 주축이 된 한·미 공동 연구진이 살아있는 동물세포에 의해 움직이는 로봇을 세계 최초로 개발했다. 공상과학(SF) 영화에나 등장하던 생명체에 가까운 로봇 개발이 머지않아 실현될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위스 생체영감공학연구소의 박성진 연구원과 케빈 파커 교수, 최정우 서강대 교수 등으로 구성된 연구진은 빛을 쬐면 수축하는 쥐의 심근세포에서 추진력을 얻어 물속을 헤엄치는 로봇 가오리를 개발했다고 국제학술지 사이언스 8일자에 발표했다. 이번 연구를 주도한 박 연구원은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해 속도와 방향까지 조종할 수 있는 로봇을 개발한 건 처음”이라고 밝혔다. 세계 최고 권위의 과학저널인 사이언스지도 연구 성과에 주목해 “동물 행동을 모방하는 생체모방 공학과 세포를 빛으로 조절하는 광(光)유전학 기술을 결합해 만든 역작”이라며 표지 논문으로 선정했다.


바다에 사는 가오리는 지느러미 근육이 순차적으로 수축했다가 펴지면서 헤엄을 친다. 연구진은 쥐의 심장 근육을 구성하는 심근세포를 일렬로 배치해 전기 자극을 주면 가오리 지느러미와 비슷한 운동을 한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어 심근세포가 전기자극 대신 파란빛에 반응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했다. 파란빛을 감지한 심근세포에선 근육 수축과 이완에 관여하는 칼슘이 나오고, 점차 자극이 다른 심근세포로 전달되면서 지느러미처럼 움직이는 원리다.

연구진은 쥐의 심근세포와 가슴성형 수술에 사용되는 실리콘으로 가오리 로봇의 몸체를, 금으로 로봇 뼈대를 제작했다. 몸통과 지느러미를 합친 체반 크기가 16㎜, 몸길이 21㎜, 무게 10㎎인 이 로봇 가오리는 파란빛을 따라 1초에 최대 3.2㎜까지 헤엄친다. 이 로봇은 파란빛이 항상 켜져 있을 때보다 1초에 1.5~2번 깜박일 때 가장 빨리 헤엄친다. 빛만 있어도 1주일가량 작동할 수 있고, 물에 포도당이 섞여 있으면 에너지를 계속해서 공급받아 헤엄칠 수 있다. 과학자들은 이전에도 살아있는 세포를 이용해 인공 해파리나 걷는 로봇을 개발했지만, 방향을 틀거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해 정식으로 ‘로봇’으로 불리지 못했다.

연구진은 살아있는 세포로 인공 심장을 만드는 연구를 하다가 이 로봇을 개발했다. 아이디어는 교신저자인 파커 교수가 냈다. 그는 “일곱 살짜리 딸과 수족관에 갔다가 ×으??직접 만져보고 가오리의 근육이 심장 박동과 비슷하게 운동한다는 데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했다. 핵심 연구는 한국과 미국에서 활동하는 한국 과학자들이 주도했다.

제1저자인 박 연구원은 서울대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한 뒤 삼성장학회 지원으로 스탠퍼드대로 유학, 전자공학 석사와 기계공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지금은 하버드대에서 생체모방 공학을 연구하고 있다. 박 연구원은 “이번 연구로 생체조직과 기계가 연결된 바이오 로봇 개발도 가능하다는 점을 처음으로 확인했다”며 “기계나 전자부품을 쓰지 않고 작동하는 로봇이 머지않아 등장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공동저자인 최정우 서강대 교수와 박경수 박사과정생은 서강대와 하버드대 공동 연구협력 사업인 서강-하버드질병바이오물리연구센터 소속으로, 가오리 로봇이 가라앉지 않고 물에 계속 떠 있도록 설계했다. 박설리 스탠퍼드대 교수는 뇌를 투명하게 만드는 투명뇌와 광유전학 창시자인 칼 다이서로스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실 출신으로, 심근세포가 빛에 반응하도록 유전자를 변형하는 바이러스를 제공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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