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여년 전 사태가 날로 심각해지자 호이안 사람들은 일본인 풍수사를 모셔와 괴물의 심장에 못을 박고 괴물을 처단했다. 그리고 그 위에 오늘날 베트남 2만동(약 1000원) 지폐 뒷면에 나오는 내원교(來遠橋·cau rai Vien)라는 일본 건축양식의 다리를 만들었다. 1593년의 일이다. ‘멀리서 온 여행객을 위한 다리’라는 뜻의 내원교는 당시 무역선 상인들의 종착지였고, 투본강을 사이에 둔 일본인 마을과 중국인 마을을 잇는 평화의 상징이다.
베트남은 1000년 가까이 중국의 지배를 받은 나라다. 진나라가 망한 뒤 새롭게 들어선 한나라는 수도를 장안에 두고 서쪽으로 팽창했고, 남월(南越)이란 이름으로 불린 한나라는 조공을 바쳤다. 조공을 바친 대가로 한자, 서적, 교육제도, 제방건설, 유교적 행정제도 그리고 유교, 도교, 불교 등 선진문물을 전수받았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베트남이 수용한 중국의 《주자가례(朱子家禮)》 속 풍수학의 모습이다. 현지화돼 《수매가례(壽梅家禮)》라고 불리던 책 속에는 ‘상지(相地)선생’이라는 풍수학인이 등장한다. 베트남 또한 주택, 묘지의 위치 선정에 풍수학을 도입해 좋은 길지를 잡는 역할을 가례로 정했다.
얼마 전 서덕열 베트남 하동신도시 현대건설 법인장의 인터뷰 기사에서도 베트남인의 풍수에 대한 애착을 알 수 있다. 그는 “풍수를 중요하게 여기는 현지인들이 견본주택에 무속인과 함께 찾아와 각자에 맞는 주택형을 요구할 땐 난감했다”며 “오죽하면 무속인을 대상으로 사전 마케팅을 해야 하나 고민할 정도”라고 말했다. 베트남은 집 앞 현관마다 액운을 물리친다는 팔괘 거울을 걸어두고, 집안에 사당을 둬 조상을 모시는 나라다. 이런 문화의 큰 줄기를 읽지 못하고 비즈니스를 펼친다는 것은 눈 가리고 아웅일 뿐이다.
거대한 괴물의 심장 위에 들어선 호이안은 17세기 원형 그대로의 모습으로 199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됐다. 호이안의 이 멋들어진 낡고 오래된 목조주택이 태풍이나 침수 때마다 용케도 살아남아 피해를 보지 않는 까닭을 현지인들은 풍수 덕이라 생각한다. 한 마을의 지속가능한 발전이 풍수 손에 달렸다고 하면 과장일까.
강해연 < KNL 디자인그룹 대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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