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축된 기업투자 '경제 뇌관'으로 급부상
공급과잉으로 수익 나빠진데다 국유기업에 돈 되는 사업 몰아줘
민간투자 증가율 1년새 '반토막'
국유산업 개방·창업 활성화 등 당국 독려에도 체질개선 늦어져
[ 베이징=김동윤 기자 ] 지난달 22일 중국 국무원 상무위원회 회의장. 회의를 주재하는 리커창(李克强) 총리의 언성은 그 어느 때보다 높았다. 리 총리는 “앞으로 민간 기업과 맺은 투자 계약을 위반하거나, 중앙정부의 민간투자 활성화 정책을 충실하게 이행하지 않은 지방정부 공무원을 발견하면 엄중히 문책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 정부가 민간 기업의 투자 부진을 얼마나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라고 신화통신은 평가했다.
그동안 연간 두 자릿수 증가세를 보이며 중국 경제성장을 견인해온 민간투자가 올 들어 급작스럽게 얼어붙으면서 중국 정부에 비상이 걸렸다. 민간투자 부진이 지속되면 중국의 경제성장세 둔화는 물론 시진핑(習近平) 정부 들어 야심차게 추진해온 경제구조 개혁도 물거품이 될 수 있어서다.
○갑작스럽게 얼어붙은 민간투자
지난 3월 중국의 실물경기 지표가 뚜렷한 회복세를 보이자 “중국 경제가 드디어 바닥을 쳤다”는 낙관론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리 총리는 그러나 여전히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경기상황을 예의주시했다. 미래 경제성장의 밑거름 역할을 하는 민간투자가 올 들어 급락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중국의 민간투자는 2013년만 해도 전년 대비 23.1% 증가해 국유기업 투자증가율(16.5%)을 압도했다. 작년에도 10.1%로 두 자릿수 증가세를 유지했다. 하지만 올 들어 5월까지 민간투자 증가율은 전년 동기 대비 3.9%로 급락했다.
○생산능력 과잉·국유기업 우대가 원인
중국 정부는 최근 민간투자 부진의 주된 원인을 지방정부 공무원의 ‘복지부동’에서 찾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중국의 민간투자 부진에는 좀 더 복합적 요인이 작용한 것으로 분석했다.
가장 큰 이유로는 민간투자의 절반 정도를 차지하는 제조업부문 생산능력 과잉이 꼽혔다. 그동안 중국 제조업 주력이던 철강 석탄 시멘트 조선 화학 등의 산업이 생산능력 과잉으로 생산설비 가동률이 64~74%대로 떨어지자 기업이 추가 투자할 엄두를 내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민간기업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역시 민간기업이 투자를 꺼리는 주된 이유란 지적도 나온다. 중국은 민간투자 활성화를 위해 시진핑 정부 들어 농업 교통시설 환경 등의 분야에서 민관합동(PPP) 방식의 투자를 적극 장려해왔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그러나 충칭의 한 민간 기업가의 말을 인용, “PPP 방식의 프로젝트에도 국유기업에 우선 기회를 주고 있으며, 민간기업에는 수익률이 낮은 사업에 참여 기회를 준 ?rdquo;며 “민간기업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공평한 기회의 결여”라고 전했다.
○과거 성장방식 회귀 우려
올 상반기 경제성장률은 중국 정부가 연초 내건 연간 경제성장률 목표치(6.5~7.0%)에 부합하는 수준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그럼에도 중국 지도부가 민간투자 부진에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은 민간기업의 투자 부진이 시 정부가 추진해온 경제구조 개혁 정책이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지표가 될 수 있어서다.
1978년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직후 중국에서 민간부문은 ‘새장 속의 새’에 비유됐다. 시장이라는 새가 날아가지 못하도록 계획이라는 새장 안에 가둬야 한다는 뜻으로, 중국 경제에서 민간부문 역할은 제한적 수준에 머물 것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중국 경제에서 민간부문이 차지하는 비중은 갈수록 높아졌다. 중국 공산당은 시 정부 출범 첫해에 열린 18기 중앙위원회 3차 전체회의(3중전회)에서 “자원 배분에서 시장이 ‘결정적 기능’을 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경제 운용에서 정부 개입을 최소화하고 시장원리를 더욱 확대·적용하겠다는 선언이었다.
이후 시 정부는 각종 행정규제 철폐, 창업 활성화, 국유기업이 독점하던 산업의 민간 개방 등 정책을 차근차근 실행에 옮겨왔다. 하지만 민간부문 투자 부진은 이 같은 정책이 별다른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음을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중국은 체제 안정을 위해 매년 최소 1000만개의 일자리를 창출해야 한다. 하지만 민간부문 투자 부진이 지속되면 이 같은 최소 일자리 창출 목표치를 달성하기가 힘들어진다. 결국 사회 안정을 위해 정부부문의 투자 확대가 불가피한 상황이다.
궈타이쥔안증권의 한 수석이코노미스트는 “중국 정부가 적정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유지하기 위해 부동산 투자, 국유기업 투자 확대에 의존하는 과거 성장 방식으로 다시 돌아갈지 모른다는 우려가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베이징=김동윤 특파원 oasis93@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