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사회부 고윤상 기자)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지난달 개인 파산 신청자에 대한 현장 확인을 강화한 이후 황당한 거짓 신청자들의 사연이 속속 법원에 적발되고 있습니다. 개인 파산자들의 뻔뻔한 꼼수를 보며 판사들은 혀를 내둘렀다고 하는데요. 어떤 사연일까요.
#1. A씨는 지난달 운영하던 식당이 망했다며 파산 신청을 했습니다. 그 식당은 이미 다른 사람에게 명의가 이전돼 있었습니다. 법원이 지정한 파산 관재인은 현장 확인을 위해 식당을 직접 찾아가 종업원들을 만났습니다. 사장으로부터 사전에 교육 받은 종업원들은 “이전에 운영하던 사장일 뿐”이라는 답변을 내놨습니다. 파산관재인이 별다른 문제를 못 찾고 뒤돌아 나오려는 순간! 바닥에 떨어진 명함을 하나가 눈에 띄었습니다. 채무자의 이름이 적힌 명함이었는데요. 이를 이상하게 여긴 파산 관재인이 종업원을 추궁하자 처음에는 “A씨는 된장이나 고추장을 식당에 납품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던 종업원이 “현재 식당 명의자는 A씨와 사실혼 관계인 남성”이라고 실토했습니다. 동거남의 명의로 식당을 이전한 뒤 자신에게 있는 빚을 파산 신청으로 청산해버리려던 꼼수였습니다.
#2. B씨는 2009년 운영하던 삼겹살집을 폐업했습니다. 그 후 쌓이는 빚으로 인해 지급불능 상태가 됐다며 법원에 개인 파산을 신청했죠. 파산관재인이 현장에 가기전 인터넷에 해당 삼겹살 식당 이름을 쳐보니 똑같은 이름의 삼겹살 집이 폐업한 자리에서 150미터 거리에 있었습니다. 의심스러웠죠. 그 삼겹살집은 B씨의 자녀 명의로 돼있었습니다. 현장을 가보니 식당이 너무 작았습니다. 자칫 무작정 들어갔다가는 제대로 현장 확인을 할 수 없었죠. 파산 관재인은 식당이 보이는 맞은 편 식당 창가 자리에 자리를 잡고 음식을 시켜 먹으며 현장을 지켜봤습니다. 잠시 뒤 B씨로 보이는 사람이 저 멀리 보였죠. 파산 관재인은 식당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장님 좀 바꿔주시겠어요?” “네~ 누구시죠?” 아니나 다를까. 사장이라며 전화를 받은 사람은 다름 아닌 B씨였습니다. “왜 거기 계신거죠?” 파산 관재인 추궁에 B씨는 되려 “우리 자식 운영하는 가게에 김치좀 담궈 주려고 왔는데 뭐 잘못됐어요?”라며 화를 냈습니다. 법원 관계자는 “자식 명의까지 쓰면서 파산 신청을 하는 사람의 사정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채권자에 대해서는 사기행각이 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3. 노래방을 운영했던 C씨는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빚더미에 앉아 노래방을 페업했다”며 지난달 법원에 파산 신청을 냈습니다. 가족들의 재산 상태를 살펴보던 파산 관재인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딸과 조카 명의로 노래방이 각각 하나씩 있는 것이었습니다. 딸의 명의로 된 가게를 찾아가보니 종업원만 가게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파산 관재인이 C씨의 사진을 보여주며 “사장님이시냐”고 묻자 주뼛하던 종업원이 “맞다”고 답했습니다. 조카가 운영하던 가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자식도 모자라 조카까지 동원한 가짜 파산 신청자였습니다.
왜 이런 파산 신청자들이 끊임없이 나오는 걸까요? 채권자들이 파산 신청자에 대해 사기죄로 고발할 수는 있지만 법원이 법적 조치를 할 수 있는 근거가 없어 ‘되면 말고식’ 신청이 끊이지 않아서입니다. 사기를 치더라도 손해를 볼 게 별로 없다는 거지요. 게다가 중간에 파산 관재인에게 걸려 기각이 될 것 같으면 미리 취하를 해버리는 꼼수도 있습니다. 파산 신청을 돕는 브로커들은 법원의 현장 확인 강화에 맞서 더 다양한 속임수를 쓰고 있다고 법원 관계자는 전했습니다. 자식과 친척까지 동원하는 사기 행각에 판사들은 씁쓸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습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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