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한경 주필 브렉시트 영국을 가다] 런던 뒷골목 펍에서 영국 공무원들과 즉석 집담회

입력 2016-07-12 02:06   수정 2016-07-12 08:00

영국은 왜 브렉시트를 선택했나

"휜 바나나 규제론은 레드 헤링일 뿐"

"EU 규제가 번영 막아" vs "규제 덕에 해변 깨끗해져"
브렉시트 놓고 열띤 논쟁



어렵사리 영국의 일선 공무원 세 명과 집단 토론 자리를 마련했다. 직장과 이름, 얼굴은 쓰지 않는다는 조건이 붙었다.

전형적인 영국인 얼굴에 한 명은 웨인 루니를 닮았고 다른 한 명은 영화에 나올 법한 예민한 얼굴인 은발의 영국 신사였다. 나머지 한 명은 40대 초반이었다.

앞의 두 사람은 브렉시트 반대자, 즉 ‘머물자(stay)’ 진영이고 한 명은 브렉시트 지지자, 즉 ‘떠나자(leave)’ 진영이었다. 대법원(The Royal Court of Justice) 뒷골목의 조그만 펍에서였다.
이들의 이름을 차례로 루니, 홈즈, 존슨이라고 하자. 나이는 루니가 32세, 존슨은 42세였다. 홈즈는 40대 후반이라고 했다. 존슨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무엇보다 유럽연합(EU)은 규제가 많아 경제 번영에 장애물”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는 “이민은 언제나 환영이지만 너무 한꺼번에 쏟아져 들어오는 것은 문제”라고 했다.

브렉시트 반대파는 조심스러운 태도였다. 그중 루니는 정치에 냉소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러나 “이민자야말로 경제 갬쩜?상징”이라며 말을 이었다. 루니는 “이민 규제는 어차피 불가능하다. 그리고 환경 규제 같은 것은 영국 스스로도 해야 하기 때문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논리를 폈다.

홈즈는 “영국 해변은 EU의 환경 규제 덕분에 깨끗해졌다”고 거들었다. 그는 “EU 규제도 EU 안에 들어가서 고치는 것이 바람직한데 그 기회를 잃는 것일 뿐”이라며 브렉시트를 비판했다. 온건한 논리였다. 세 사람은 서로 숱한 토론을 해본 듯 상대가 말을 시작하면 바로 익숙한 단어들로 반박하는 모습도 보였다. 투표에서 승리한 존슨만이 기분이 좋아 보였다.

규제에 대한 각자의 입장을 물었다. EU의 소위 ‘휘어진 바나나’ 규제에 관해서도 물었다. (휘어진 바나나 규제란 EU가 판매용 바나나를 정의하면서 일정한 각도 이상으로 휘어진 바나나를 판매해서는 안 된다는 규제를 만들 정도로 규제가 많다는 EU 비판론의 하나다.)

이 질문이 나오자 두 반대론자는 일시에 “아, 그것은 레드 헤링(붉은 청어)일 뿐”이라며 익숙한 반박 논리를 들고 나왔다. ‘붉은 청어’는 무언가를 오도하기 위한 미끼 전술이라는 의미의 관용구다.

내게는 맥주를 권하더니 막상 자신들이 들고온 것은 레모네이드였다. 점심시간 음주는 금지였다. 전날 영국 중앙은행이 취한 대외 접촉 금지령 비슷한 지시가 사법부에도 내려졌는지 물었다. “특별히 내려진 지시는 없지만 평소에도 그렇게 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지난 선거에서 어느 정당을 찍었느냐고 물었다. 두 사람은 답을 머뭇거렸고 존슨은 지난 선거에서는 노동당을 찍었다고 답했다. 루니는 마지못해 “데모크랫”이라고 답했다. “사회주의적 데모크랫?”이란 질문에는 고개를 돌리며 모호한 미소만 지었다.

이번 브렉시트 논쟁 과정에서 제러미 코빈의 노동당은 심각한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논쟁은 보수당을 중심으로 치열하게 벌어졌고 노동당은 구경만 하는 처지였다. 지금의 여론은 아예 노동당을 잊은 상황이다.

브렉시트 결정 이후 전망을 물었다. 신중한 홈즈는 “우려된다. 어떻든 불안정하고 불안한 시간이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그러나 협상은 잘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루니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했다. “유럽경제지역(EEA) 방식(조금 느슨한 동맹)이 대안이 되지 않겠나. 그러나 어떤 경우든 무언가 비용은 지급해야 할 것”이라고 말을 받았다. 존슨은 EU 체제가 헌법적 가치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며 심각하게 말했다.

이렇게 직장마다 대학마다 치열한 논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런던정치경제대(LSE)는 대체로 지지였고, 케임브리지대는 반대 분위기 세미나를 경쟁적으로 열고 있었다. 길에서, 광장에서 만나는 사람도 쉽게 논쟁에 뛰어들었다.

자신을 윌리엄이라고 소개한 63세의 은퇴자는 정치를 싫어한다며 어리석은 일만 찾아서 하는 것이 정치라고 비판했다. 이번 브렉시트도 그런 어리석은 짓의 하나라면서…. 그는 이민자도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이며, EU에 내는 분담금도 대부분 영국에 되돌아온다며 일일이 손가락을 꼽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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