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세점 보증금 유동화도 보류
신용 AA+에도 회사채 공모 포기…급한 돈은 일단 CP 발행해 충당
증권신고서 제출하려면 수사경과 공개해야 돼
채권발행 줄줄이 보류
차입금 1년 만에 3조 증가…자금조달 막혀 전전긍긍
[ 하헌형/서기열/이태호 기자 ] ▶마켓인사이트 7월13일 오후 4시48분
롯데그룹 계열사의 회사채 발행과 자산 유동화 등 자본시장을 통한 자금 조달이 사실상 중단됐다. 비자금 조성 의혹 등에 대한 검찰의 전방위 수사에 부담을 느낀 기관투자가들이 롯데 계열사 투자를 꺼리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호텔롯데 등 롯데그룹 주요 계열사가 운영자금을 확보하기 위해 추진해온 채권 발행 계획이 줄줄이 연기되거나 보류되고 있다. 롯데칠성음료와 롯데물산은 이달 각각 3000억원, 1000억원 규모로 공모 회사채를 발행하려던 계획을 연기했다. 회사채 투자자 모집 성공 여부가 불확실한 데다 증권신고서를 통해 투자자에게 검찰 수사 경과 등 경영 상황을 공개해야 한다는 점이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 업계 분석이다.
호텔롯데도 이르면 이달 인천국제공항 면세점 임차보증금을 유동화해 5000여억원의 자금을 조달하려던 계획을 잠정 보류한 것으로 알려졌다. 호텔롯데는 작년 2월 인천국제공항 3기(2015~2020년) 면세점 운영 사업자로 선정되면서 5360억원의 임차보증금을 인천국제공항공사에 냈다. 면세점 임대차계약이 끝나는 시점에 돌려받을 돈이다. 호텔롯데는 이 보증금을 담보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해 현금을 확보할 계획이었지만, 검찰 수사가 본격화하자 발행 작업을 중단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 증권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연기금 등 공적 성격을 지닌 기관의 운용책임자들이 문제가 생길 것을 우려해 투자를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와중에 롯데케미칼은 회사채 발행을 포기하고 지난 12일 약 4년 만에 3000억원어치 기업어음(CP)을 발행했다. CP는 증권신고서 제출 등의 의무가 없어 발행이 간편하지만 만기 1년 미만의 단기자금 조달 수단이어서 회사채 발행이 어렵거나 급전이 필요한 기업이 발행한다.
롯데케미칼은 높은 신용등급(AA+)을 바탕으로 2013년 이후 연평균 45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해왔다. 지난 4월에는 국내 기업의 회사채 발행 사상 두 번째로 많은 금액인 7600억원어치 회사채를 발행하는 데 성공하기도 했다. 회사채 시장에서 롯데케미칼에 대한 신인도가 그만큼 높았다는 의미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석유화학 업황 호조에 힘입어 전년(3509억원)보다 360% 급증한 1조6111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매출 대비 영업이익률은 13.8%로 동종업계 최고 수준이다.
그러나 검찰의 비자금 수사 여파로 당분간 회사채 시장에서 자금 조달이 어려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팀장은 “그룹 총수가 구속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면 신용등급까지 강등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보수적인 기관투자가들로선 채권을 사는 데 신중을 기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롯데케미칼은 추가 CP 발행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투자은행(IB)업계는 대다수 롯데 계열사의 현금 흐름이 좋아 당장은 별문제가 없겠지만 지금과 같은 신용경색이 장기화하면 그룹 전반의 자금 사정이 나빠질 것으로 보고 있다. 롯데그룹은 지난해 형제 간 경영권 분쟁 사태가 벌어진 이후에도 순조롭게 회사채를 발행했다.
롯데하이마트, 롯데제과는 회사채를 발행을 앞두고 기관투자가를 대상으로 진행한 수요예측(사전 청약)에서 모집액보다 많은 투자금을 끌어모으기도 했다. 한 자산운용사 채권운용본부장은 “경영권 분쟁 때 롯데그룹의 대외적인 신인도는 별문제가 없었지만 이번 검찰 수사로 시장의 신뢰도가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롯데그룹의 자금 수요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이다. 우선 호텔·면세점 사업 확대, 서울 잠실 롯데월드타워 건설에 따른 지출이 예정돼 있다. 한국신용평가에 따르면 롯데쇼핑 호텔롯데 롯데케미칼 롯데제과 등 7개 주요 계열사의 올해 예상 투자 규모는 9조원이다. 여기에 올 하반기 만기가 돌아오는 계열사들의 회사채 규모도 총 1조1050억원에 달한다.
차입금도 이미 큰 폭으로 증가한 상태다. 롯데그룹은 올 상반기 국내 10대 그룹 중 SK그룹에 이어 두 번째로 많은 1조2800억원어치 공모 회사채를 발행했다. 잇단 기업 인수합병(M&A)과 시설 투자 등 사세를 확장하는 과정에서 대규모 현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롯데그룹의 비금융 계열사 총차입금은 지난해 말 기준 19조514억원으로 2014년 말보다 3조원 가까이 늘어났다.
회사채 시장을 통한 자금조달이 전면 중단된 상태에서 롯데가 운영자금 등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은행에서 이자를 더 주고 돈을 빌리거나 단기자금 조달 수단인 CP 발행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한 증권사 기업금융본부장은 “과거 횡령 등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은 한화그룹이나 CJ그룹의 사례를 볼 때 롯데그룹이 시장의 신뢰를 되찾기까지는 최소 6개월 이상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하헌형/서기열/이태호 기자 hh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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