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서 국제부 기자) 오늘은 사과의 말씀으로 글을 시작할까 합니다.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기사 가운데 실수가 있었습니다. 영국 총리직을 두고 테리사 메이 전 내무장관과 경합을 벌인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차관의 정확한 표현은 앤드리아 레드섬 에너지기후변화부 ‘부장관’입니다.
영국 행정부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실수를 했습니다. 그 이유를 설명할까 합니다. 아래의 글을 읽다보면 국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의원내각제를 특징으로 하는 영국의 행정 조직을 파악하는데도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나름 흥미진진합니다.
영국 정부를 알아가기에 앞서 대한민국 중앙정부 조직부터 살펴봐야 합니다. 아시다시피 한국 정부에는 모두 17개 부(部)가 있습니다. 부의 영어식 표현은 모두 미니스트리(Ministry)입니다. 부의 장관은 미니스터(Minister)라고 합니다. 간단하죠.
참고로 두 명의 장관은 부총리(Deputy Prime Minister)를 겸하고 있습니다. 기획재정부 장관과 교육부 장관은 장관이기에 앞서 부총리입니다. 황교안 총리 바로 아래 서열입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이준식 사회부총리 등으로 부르는 사람들도 있는데 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이준식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정식 직함입니다.
이제 영국을 소개해 드립니다. 영국에는 24개 장관급 부가 있는데 표현 방식이 네 가지나 됩니다. 재무부는 허 매저스티스 트레저리(Her Majesty’s Treasury·약칭 HM Treasury)라고 합니다. 굳이 번역을 하자면 ‘여왕 폐하의 금고’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이름만 들어도 가장 중요한 부서라는 사실을 직감할 수 있습니다. 여왕의 주머니 사정을 책임지는 부서 아닙니까.
다우닝가 10번지는 영국 총리의 관저지요. 관저에서 찍은 영국 총리 사진에는 문앞에 적힌 숫자 ‘10’이 빼놓지 않고 들어있죠. 문패는 어떤 내용이 적혀 있는지 알고 계십니까. 모든 미니스터 가운데 가장 높은 자리라는 뜻의 프라임 미니스터(총리)가 아닙니다. 퍼스트 로드 오브 더 트레저리(First Lord of the Treasury)라고 적혀 있습니다. 국가재정위원장이라는 의미입니다. 총리가 겸임하는 자리인데도 ‘금고책임자’라는 직함이 써있는 것입니다. 입헌군주제를 채택하는 나라답습니다. 여왕으로서는 누가 국내 정치의 책임자인가보다 누가 나랏돈을 관리하는지가 더 중요하다고 볼 수도 있겠다는 생각입니다.
내무부(Home)와 외무부(Foreign & Commonwealth)는 오피스(Office)라고 합니다. 영국에서는 검찰총장(Attorney General)을 장관이 맡고 있으며 검찰부의 타이틀도 오피스입니다. 법무부(Justice)와 국방부(Defence)는 한국처럼 미니스트리네요. 역사가 오래되고 덩치가 큰 부서는 각별하네요. 나머지는 디파트먼트(department)라고 불립니다.
그렇다면 저는 왜 실수를 하게 됐을까요. 장관을 지칭하는 명칭이 한국과 달랐고 한국에는 부장관 제도가 없어 차관이라고 쓰는 것이 좋겠다는 편의주의적 澁瓚?화를 불렀습니다. 영국에서는 장관을 세크러터리(secretary)라고 부르고 부장관은 미니스터라고 부릅니다. 레드섬 부장관은 에너지기후변화부(Department of Energy & Climate Change)의 미니스터였고, 내무부 장관 시절 메이 총리의 정식 직함은 세크러터리 오브 스테이트 포 홈 오피스(Secretary of State for the Home Office)였습니다.
따지고보면 내무부 장관이었던 메이 총리는 레드섬 부장관보다 훨씬 높은 직위에 있었던 것입니다. 역사도 깊고 부서도 큽니다(내무부의 부장관은 3명이나 되지만 에너지기후변화부의 부장관은 레드섬이 유일합니다). 재무부 장관은 챈슬러 오브 엑스체커(Chancellor of the Exchequer)라고 부릅니다. 재무부는 역시 특별 대접입니다. 총리라는 뜻의 프라임 미니스터는 왠지 어색하게 느껴지네요. 프라임 세크러터리가 맞는 표현 아닌가 싶은데 관습으로 그렇게 부르는 것 같습니다.
장관과 부장관은 모두 의회 의원들입니다. 영국은 장관과 부장관은 정치인들이 맡고 차관은 공무원이 담당하는 구조입니다. 그렇다면 차관의 영국 영어식 표현은 무엇일까요. 주한 영국대사관에 따르면 언더 세크러터리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차관들은 퍼머넌트 세크러터리(Permanent Secretary)로 돼 있습니다. 퍼머넌트 세크러터리는 공직자가 오를 수 있는 가장 높은 직위입니다. 주한 영국대사관은 이러한 방식에 따라 공식 보도자료를 낼 때 장관과 부장관, 차관을 각각 구분하고 있습니다.
레드섬 부장관을 레드섬 차관으로 표기한 기자는 저뿐만 아닙니다. 사실상 모든 언론이 레드섬 차관이라고 썼습니다. 앞으로 저는 실수하지 않겠다는 말씀을 드리면서 다른 기자들이 잘 못 썼다면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언론이 레드섬 차관이라고 했을 때 주한 영국대사관이 미리 정확한 표기를 가르쳐줬더라면 좋았을 것이라는 원망(?)이 들기도 합니다.
현재 영국 정부의 홈페이지에는 부서간 서열이 표시되지 않고 알파벳 순서로 돼 있습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재무부를 필두로 내무부 등의 순서로 돼있었는데 말이지요. 메이 총리가 취임하면서 정부 조직을 어떻게 재편할지 몰라 그런 것 같습니다. 메이 총리는 브렉시트 찬성파인 보리스 존슨 전 런던시장을 외무장관에 기용하고, 필립 해먼드 외무장관에게 재무장관을 맡기는 등의 중요 부의 인선을 결정했고 앞으로 이틀 안에 나머지 부의 장관 인사를 마무리 지을 예정입니다.
메이 총리가 브렉시트 전담부서를 새로 만들 생각이 있다는 보도가 나옵니다. 브렉시트 전담 부가 생겨나면 오피스일까요, 미니스트리일까요, 디파트먼트일까요. 저는 디파트먼트가 될 것 같다는데 한 표 걸겠습니다. (끝)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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