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10대로 되돌아오다
아이는 어른을, 어른은 아이를 꿈꾼다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어 안달한다. 어른들은 젊은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음을 애석해 한다. ‘어른이 되면 하고 싶은 걸 마음대로 하고, 공부를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을까.’ ‘부모님이 살뜰히 돌봐주시던 어린 시절이 그립다. 풋풋한 청년으로 돌아가면 더 열심히 준비할 텐데.’ 각각 이런 생각을 하면서.
시위를 떠난 화살은 되돌아오지 않는 법이니 어른은 아이가 될 리 없고, 아이들은 시간이 지나면 저절로 어른에 닿는다. ‘일에 치이면서 끝없이 새로운 지식을 습득해야 하는 어른’이 되면 정작 어린 시절을 그리워하겠지만.
1999년에 발표한 《19세》에는 주인공 정수가 13세부터 19세까지 겪은 일이 담겨 있다. 마음의 갈피를 잡기 힘든 사춘기, 아름답지만 복잡다단한 기간이다. 1970년대 대관령을 넘고 싶은 강릉 소년은 질풍노도의 시기를 어떻게 보냈을까. 학업성적이 꽤 우수하지만 전교 1등인 형에게 “머리 나쁘면 손발이 고생”이라는 핀잔을 듣는 정수는 속히 어른이 되길 맹렬히 갈망한다.
어떤 일에는 다 때가 있는 것
아버지에게 돈을 타가는 서울대생 형보다 잘난 삶은 일찌감치 돈을 벌어 어른이 되는 거라고 생각한 정수. 인문계 고등학교에 가서 대학에 진학하라는 부모의 기대를 저버리고 상업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졸업 후 한국은행에 취직해 돈을 모아 대관령에서 고랭지 농사를 짓고 싶은 꿈을 속히 이루기 위해서다.
하지만 왼손잡이 정수는 형편없는 주산 실력이 결코 나아질 수 없다는 걸 알고 1학년 때 자퇴를 결심한다. 부모님이 야단도 치고 달래기도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책과 교복까지 태우는 모습을 본 부모님은 하는 수 없이 허락한다. 아버지는 철없는 고집불통에게 ‘첫해 농사에 실패하면 군말 없이 학교로 돌아갈 것’을 명한다. “어른이 되면 공부를 많이 한 사람과 적게 한 사람의 차이는 크게 나지 않는다. 책을 많이 읽은 사람과 적게 읽은 사람의 차이는 몇 마디 얘기만 나눠 봐도 금방 눈에 보인다”며 책을 많이 읽으라는 당부도 한다.
대관령으로 올라간 정수는 아버지에게 배운 농사 실력을 발휘해 첫해에 큰 성공을 거둔다. 엄청나게 비싼 오토바이를 사고 다방에 들락거리며 ‘어른’이 됐다는 착각에 빠진다. 친구 승태와 함께 은밀히 상상했던 일을 직접 체험하거나 목격하면서 신기함과 자괴감을 동시 ?느낀다.
이듬해 농사는 그저 그랬고 정수의 패기도 시들해진다. ‘어떤 일에는 다 때가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자각을 하며 2년간 농사를 접은 정수는 학교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사랑 고백을 받은 승희 누나가 정수에게 열여덟이 아름다운 나이라는 걸 일깨워주며 “아마 스무 살만 지나가도 그 말이 스스로 아름답게 느껴지지 않을지도 몰라”라고 할 때 ‘스무 살’에 대해 새삼 생각하게 된 것이다. 아버지와의 약속대로 서가 하나를 채우고 남을 정도로 많은 책을 읽으면서 자신이 ‘어른 노릇’이 아닌 ‘어른 놀이’를 했다는 걸 깨달은 덕분이기도 하다.
정수는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하지 못하고 있는 무언가를 내가 하고 있는 것’보다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다하고 있는 어떤 것을 나만 못하고 있다는 것’을 깨닫고 19세에 상업고등학교로 돌아간다.
어른들의 경험에 귀 기울이라
소설은 창작이지만 작가의 체험이 녹아들게 마련이다. 《19세》의 작가 이순원은 강릉상업고 1학년을 마치고 2년간 고랭지 채소 농사를 지었다. 강원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뒤 직장생활 할 때부터 많은 작품을 발표해 동인문학상, 현대문학상, 한무숙문학상, 효석문학상을 받았다.
작가를 둘러싼 여러 환경 또한 작품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이순원 작가가 농촌체험을 《19세》에 녹였다면 나는 공업도시 울산에서 체험한 것을 《17세》에 담았다. 나는 이순원 작가와 정반대로 상고에 가라는 부모에게 부산의 인문고로 보내달라고 떼쓰다가 몰래 상고 시험을 치지 않았다. 그 대신 울산의 대형 공장 실험실에 들어가서 일찌감치 어른 체험했고, 그때 경험을 《17세》에 담았다.
이미 집을 떠난 친구도 있고, 속이 부글부글 끓는 친구도 있을 것이다. 어른이 되고 싶은 조급함에 청소년기를 생략하고픈 유혹이 불쑥불쑥 올라온다면 갖은 고생 끝에 학교로 돌아간 《19세》의 정수를 만나보라. 앞서 삶을 개척한 부모님과 선생님의 권유를 따르는 것이 진정 시행착오를 줄이는 길이다. 나는 엉뚱한 곳을 한참 기웃거리다가 뒤늦게 대학에 진학했고, 나의 사라진 여고 시절을 아쉬워하며 살고 있다.
갈피를 잡기 힘든 내 마음이 뭔가 일을 벌일 것만 같다면 부모님과 상의해 여름 방학에 색다른 체험을 해보라. ‘끼’를 충분히 불사른 다음 2학기를 멋지게 시작하는 거다. 어떤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 ‘같은 나이의 다른 아이들이 다하고 있는 것’에 충실하자. 청소년기를 알차게 보내야 ‘어른의 길’에 탄탄하게 들어설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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