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유권 분쟁에 관한 결정아니라 유엔해양법협약 위반 판단
9단선은 법적 근거 없고, 해양지형도 섬으로 분류할 수 없어
인공섬 건설로 해양오염 적시…중국 반발에 긴장 고조 우려
2016년 7월12일, 이날은 국제법 역사에서 기억될 만한 날이 될 것이다. 2013년 1월22일 필리핀의 제소로 시작된 필리핀과 중국 간의 남중국해 관련 분쟁에 대해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 중재재판소(이하 중재재판소)가 최종 결정을 내린 날이다. 이번 중재재판소 결정은 남중국해, 특히 난사군도에 있는 어떤 해양지형이 유엔해양법협약상 섬인지 암석인지 등의 문제와 같이 실체적인 사안에 대한 판단이다. 이런 판단이 가능했던 이유는 2015년 10월29일 중재재판소가 필리핀이 청구한 사안을 판단할 관할권이 있는지에 대해 중재 결정을 내렸기 때문이다.
중재재판소는 유엔해양법협약 제7부속서에 따라 구성됐기 때문에 유엔해양법협약의 해석 또는 적용 문제에 대해서만 판단할 수 있고, 영유권 문제는 다룰 수 없다. 따라서 일부 언론이 이번 중재 결정을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에 대한 결정’이라 표현한 것은 잘못 틈?
중재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있기 때문에 정치적 또는 외교적 공방과 달리 그 파장은 분쟁의 양상을 바꿀 정도로 상당하다. 하지만 중국은 ‘불법적인’ 중재재판이라는 입장에서 중재재판이 시작되기 전부터 불출정을 선언하고 중재재판을 무시하는 전략을 취했기에 이번 중재 결정에 예상보다 더 큰 충격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중재재판소 결정에서 눈여겨봐야 하는 쟁점은 크게 네 가지다. 첫째, 중국이 국민당 정부 시절부터 주장해 온 9단선(nine-dash line)이 유엔해양법협약과 양립할 수 있는지다. 둘째, 남중국해 특히 난사군도에 있는 해양지형들이 국제법적으로 (만조 시에는 수면 아래에 있는) 간조노출지, 암석 또는 섬인지다. 셋째, 중국이 자국이 점거한 해양지형들에 매립공사를 한 뒤 인공적인 시설물을 설치하는 과정에서 해양환경을 보호하고 보전해야 할 유엔해양법협약상 의무를 위반했는지다. 마지막으로 중재재판소 소송절차에서 중국이 어느 정도 국제법을 이해하고 행동했는지다.
섬으로 간주하기 위한 기준 높여
9단선부터 살펴보면 중국은 지금까지 공식적으로 9단선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히 밝힌 적이 없다. 다시 말해, 9단선 내 모든 해양지형이 중국 주권 하에 있다는 의미인지 9단선 내 모든 수역이 중국 영해인지 등에 관해 중국은 의견을 밝힌 적이 없다. 그런데 중재재판소는 중국이 9단선 내 생물 및 비생 ?자원에 대해 ‘역사적인 권리’를 주장해 왔다고 9단선의 의미를 해석한 뒤 9단선이 유엔해양법협약과 양립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음으로 난사군도에 있는 피어리크로스암초 등 해양지형들의 법적 지위와 관련해 관심을 끌었던 문제는 중재재판소가 섬과 암석의 구분 기준을 명확히 제시할지 여부였다. 유엔해양법협약상 섬은 200해리에 이르는 배타적 경제수역을 가질 수 있지만 암석은 최대 12해리에 이르는 영해만 설정할 수 있다. 유엔해양법협약이 섬과 암석을 구분하는 기준으로 ‘인간의 거주 가능성’과 ‘독자적인 경제활동’을 제시하고 있지만 그 의미는 모호했다. 중재재판소는 이번 결정을 통해 어떤 해양지형이 섬으로 분류되기 위해서는 마실 수 있는 물의 존재, 식량 확보 가능성 등 섬의 여건이 어느 정도 규모가 되는 사람들이 살 정도가 돼야 하고, 섬 인근 수역에서 이뤄지는 어업과 같은 경제활동이 아니라 섬 자체에서 경제활동이 가능해야 한다고 섬 간주 기준을 매우 높였다. 중재재판소에 따르면 난사군도에는 섬으로 간주되기 위한 기준에 부합하는 해양지형이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다. 남중국해 상당 부분은 공해임이 법적으로 확인된 것이다.
해양환경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문제와 관련해 중재재판소는 중국의 인공섬 건설 관련 공사가 해양환경에 엄청나고 오랫동안 지속되는 손해를 일으켰다는 점을 인정했다.
소송과정에서 실책 반복한 중국
마지막으로 중국은 소송절차에서 실책을 반복했다. 중국은 이미 2013년 2월19일 불출정을 선언하고 소송절차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도 소송이 진행 중이던 2014년 12월7일 중국 정부는 ‘입장표명서’라는 공식 견해를 발표했다. 이는 중국이 이번 소송에서 보여준 가장 큰 실책 중 하나인데, 입장표명서를 통해 중재재판소는 중국 주장의 실체를 확인할 수 있었고, 소송절차가 가속화하는 계기가 됐다. 불출정 결정 자체도 중국의 실책으로 보인다. 중국은 불출정을 통해 소송이 이뤄지는 동안 필리핀의 주장들을 반박하거나 무력화시킬 기회 자체를 상실했다.
남중국해에 존재하는 해양지형 및 해양영역의 법적 지위를 명백히 한 이번 중재재판소 결정은 중국의 인정 여부에 관계없이 남중국해를 바라보는 법적 틀이 될 것이다. 만약 다른 아세안 국가들도 국제법적 대응에 나선다면 중국의 마지막 카드는 유엔해양법협약 탈퇴밖에 없다. 그러나 이는 중국이 그동안 유엔해양법협약 내에서 누리던 여러 권리 또는 권한을 잃게 하거나 약화시킬 수도 있다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이다.
일본도 경제수역 영향받을 것
이번 중재재판소 결정에 일본도 편치만은 않을 것이다. 남중국해 상당 부분이 공해가 됐기 때문에 미국이 일본에 남중국해에서 양국 해군 함정을 동원해 공동 순찰을 하자고 요구하는 경우 적극적으로 참여하겠지만, 섬과 암석의 구분 기준에 따라 일본이 태평양에서 영유하고 있는 오키노토리시마가 기껏해야 12해리의 영해만 가질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에 상당 부분의 배타적 경제수역을 잃을 수도 있다.
한국은 이번 중재 결정과 별다른 관련성은 없지만 미국 또는 중국으로부터 입장 표명을 요구받을 가능성이 있다. 이때 한국은 국제법에 따라 분쟁은 평화적으로 해결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의견을 밝힐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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