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작품이 너무 많아도 안 좋지. 미술은 상품이고, 화랑은 시장이야. 그러니 화가의 인생이란 상품 포장지라고나 할까.”
이중섭의 작품을 베껴 그린 ‘가짜화가’ 이허중이 죽었다는 얘기를 듣고 한 화랑 사장은 이렇게 말한다. 이른바 ‘감정 전문가’들은 이허중의 그림을 두고 이중섭이 직접 그린 진품으로 판단한 상황이었다. 이허중이 더 이상 ‘이중섭 진품’을 내놓지 않아야 희소성에 의해 자기가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화랑 사장은 생각한다. 이허중은 이중섭의 진품을 다수 소장하고 있었으나 감정사들은 이를 되려 위작으로 판단한다. 이들은 선이 약하다거나 물감이 맞지 않는다는 등 온갖 이유를 댄다. 법원은 이들의 말을 믿고 진품을 압수해 소각한다.
《소설 토정비결》로 유명한 이재운 작가(58·사진)가 최근 펴낸 소설 《가짜화가 이중섭》(책이있는마을)의 한 대목이다. 소설에서 이허중은 이중섭과 같은 병원에 입원한 것을 계기로 그의 제자가 된다. 그는 그림을 연습하기 위해 스승의 작품을 베껴 그린다. 이 습작을 본 한 재력가가 큰돈을 주 庸?이중섭의 작품을 계속 베껴서 달라고 한다. 재력가는 이를 이중섭의 진품으로 둔갑시켜 시장에 유통한다. 이허중은 이 그림들이 위작이라는 것을 숨기려는 사람들에 의해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작가는 이번 작품을 10년 전에 썼다고 했다. 최근 미술계가 천경자, 이우환 작가 등의 위작 논란으로 시끄러운 것을 보고 공식 출간을 결심했다. 작가는 “예술작품을 돈으로만 보는 세태를 풍자하고 싶었다”며 “전문성을 내세우지만 정작 진품과 위품을 제대로 구분하지 못 하는 감정업계에 대한 비판의 의미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진품과 위조품을 물감이나 종이의 질 차이 등으로 구분하는 것은 골동품에나 해당하는 말”이라며 “화가의 혼이 들어갔느냐, 들어가지 않았느냐를 감정할 방법이 없는 한 진품과 위조품의 싸움은 끝날 수가 없다”고 지적했다.
이중섭의 비극적 삶을 재조명하는 의미도 있다. 이중섭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평원군의 부잣집에서 태어났다. 6·25전쟁이 터지자 모든 것을 잃고 부산으로 피란 갔다. 가난에 시달리다 아내와 두 아들을 일본으로 보냈다. 다시 가족을 불러 함께 살려고 열심히 그림을 그리지만 잘 팔리지 않았다. 정신분열 증세를 보이다가 간암으로 삶을 마쳤다.
이씨는 “소설 속 이허중도 6·25와 4·19, 5·16을 겪으며 점점 나락으로 떨어진다는 점에서 이중섭의 삶과 비슷하다”며 “예술가가 시대적 사건과 무관하게 살기 어렵다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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