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금납부·고용 창출 등 장수기업 실적 뛰어난데
실효세율 최대 65%…원활한 가업승계 가로막아
세액공제 조건 까다로워 혜택 보는 곳 0.001% 불과
[ 안재광 기자 ]
이상일 새한진공열처리 사장은 지난해 경기 화성에 ‘스마트 공장’을 도입했다. 영업부터 자재 입고, 공정 상황 등을 실시간으로 모든 작업자가 파악할 수 있게 바꿨다. 이 사장은 스마트 공장 구축을 위해 연매출(40억원)의 25%에 달하는 약 10억원을 투자했다. 가업승계가 결정적 이유였다.
이 사장의 아들 이성환 대리는 3년여 전 가업을 이어받기로 한 뒤 입사했다. 처음엔 일이 험하고 주말도 따로 없는 열악한 환경이어서 주저했다. 하지만 “열처리는 뿌리가 되는 산업이라 누군가는 반드시 해야 한다”는 이 사장의 권유에 마음을 바꿨다. 이 사장도 열정적으로 일을 배우는 자식을 보며 조금이라도 더 좋은 환경과 시스템을 제공해 주고 싶었다.
◆상속 공제받는 기업 年 59곳 불과
대(代)를 잇는 장수기업을 많이 늘려야 한다는 공감대가 사회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일자리, 세수 등 경제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게 입증되고 있어서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업력이 20~30년인 기업의 고용능력지수(평균 기업 일자리를 1로 봤을 때 일자리 수)는 1.26으로 10년 미만 기업의 0.49에 비해 훨씬 높았다. 30~40년은 2.37, 40~50년은 5.17에 달했다. 70년 이상인 기업은 27.39에 이르렀다. 장수기업은 세금도 많이 낸다. 법인세 납부능력지수의 경우 10년 미만 기업은 0.52에 불과하지만 60년 이상 기업은 5.14였다.
하지만 상속·증여세 부담이 커 가업을 이어받고 싶어도 그렇게 하기 힘들다는 게 기업인들의 주장이다. 최대주주 지분의 할증평가 등을 감안하면 실효세율이 최대 65%에 달해 세계 최고 수준이라는 것이다. 한 기업인은 “현재 세금 체계는 가업승계와 부(富)의 대물림을 같은 잣대로 판단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도 가업승계와 관련된 규제 해소에 적극 나서고 있다. 가업승계 시 공제 혜택을 주는 식으로 세금 부담을 낮춰 승계를 유도하고 있다. 2007년 이후 공제 대상과 한도를 꾸준히 높여왔다. 매출 3000억원 미만 중소·중견기업에 한해 최대 500억원까지 공제해주고 있다. 문제는 세제 혜택을 보는 기업이 많지 않다는 데 있다.
국세청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4년까지 5년간 총 296개 기업이 상속 공제 혜택을 받았다. 연평균 59개 기업만 이 제도를 활용해 승계했다. 중소기업이 350만개가 넘는 것을 감안하면 0.001%에 불과했다. 공제 금액은 연평균 600억원에도 못 미쳤다.
상 ?후 10년간 같은 업종을 유지하고, 근로자 수도 10년간 100%(중견기업은 120%)를 맞춰야 하는 등 조건이 까다롭다.
◆상속세 부담에 기업 매각까지
상속을 하고 싶어도 세금 부담이 크다 보니 이를 회피하려고 편법을 쓰는 일도 있다. 반도체 제조 장비를 생산하는 H사는 지난해 ‘2세 경영자’에게 116억원의 보수를 줬다. 그해 회사 순이익(217억원)의 절반이 넘는 규모였다. 퇴직금 정산 등 일회성 비용이 포함되긴 했지만 ‘과도했다’는 지적이 많았다.
비판 여론을 감수하면서 막대한 보수를 지급한 것은 세금 때문이었다. 2세 경영자는 부친으로부터 지분을 증여받은 뒤 수백억원의 증여세 고지서를 받아 들었다.
상속 준비가 안 된 기업은 회사를 팔기도 했다. 과거 손톱깎이 세계 1위 기업 쓰리세븐, 국내 종자업계 1위 농우바이오 등이 그랬다. 창업주의 갑작스러운 별세 이후 상속세를 감당하지 못해 유가족들이 지분을 매각했다. 이 때문에 기업들은 “가업승계에 따른 세금 부담과 요건을 더 완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중견기업연합회 측은 공제 대상 기업 범위를 기존 매출 3000억원에서 5000억원 미만 기업으로 확대해 달라고 요청하고 있다. 공제 금액도 500억원에서 1000억원 이상으로 올려달라고 정치권에 건의했다. 업종 유지 규정 또한 폐지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업종 구분이 모호해지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다.
안재광 기자 ahnj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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