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상의 제주포럼서 정부·기업에 제언
리스크 테이킹에 미래 달렸다
소극적 경영은 미봉책일 뿐…과감한 투자가 기업 생존 좌우
정부 R&D 투자, 멀리 봐라
미국, 반도체·인터넷에 수십년 투자…단기간 성과 없어도 포기 안돼
제조업은 여전히 경제 핵심
서비스업도 중요하지만 수출 한계…규제 축소·복지 확대가 나아갈 길
[ 강현우 기자 ]
“한국 정부와 기업들이 도박할 때가 됐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경제학과 교수는 지난 23일 제주 서귀포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상공회의소 제주포럼 특별강연을 마친 뒤 한 인터뷰에서 “기초산업을 키우고 살아남으려면 기업가정신을 발휘해 ‘리스크 테이킹(risk taking·위험 감수)’을 해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장 교수는 “미국이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원동력은 기초과학과 산업 경쟁력에 있다”며 “기초산업을 일으키려면 정부가 연구개발(R&D) 지원에 대한 접근 방법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진단했다. 그는 한국의 R&D 총액에서 정부 비중이 20~25%인데 3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고 제안했다.
그는 “미국이 반도체와 인터넷에 투자할 때 5~10년을 본 게 아니고 그야말로 ‘아무 생각 없이’ 몇십 년을 보고 대규모 투자를 지속했다”며 “한국은 그동안 선진국을 따라 하면 됐지만 앞으로는 독자적인 R&D 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정부가 특정 R&D부문에 돈을 쏟아부어도 성과가 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며 “정권이 바뀌어도 R&D 투자가 지속될 수 있는 국민적 합의를 형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정책이 바뀌는 건 당연하지만, 국민적 합의를 통해 어떤 정권이 집권해도 해야 된다는 것은 있어야 한다”며 “장기 R&D나 복지 문제가 그렇고, 30~40년 뒤 결과가 나오는 것은 정파를 초월하는 합의를 형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교수는 최근 위기감이 높아지고 있는 한국 기업에 위험 감수를 주문했다. 그는 “어떻게 해서라도 미래로 나아갈 정책을 만들어내는 기업은 살아남고, 소극적으로 비용을 줄이는 식으로 경영하는 기업은 당장 수년 살아남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미래에는 생존하지 못한다”며 “도박이라고 표현할지라도 리스크 테이킹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조업의 중요성을 역설하면서 “김대중 정부 때 제조업을 굴뚝산업으로 폄하했고 이명박 정부에선 ‘금융허브’를 한다면서 리먼브러더스가 망하기 두 달 전에 산업은행이 인수를 검토했는데, 그때 인수했다면 한국 경제가 크게 흔들렸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 교수는 “제조업은 아직도 경제의 핵심”이라며 “서비스산업이 커지는 부분 가운데는 제조업에서 엔지니어링 등 일부가 서비스로 잡혀서 나타나는 착시현상도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서비스업은 성격상 수출이 제한돼 국가 경제 견인차가 되기 어렵다”며 “서비스업이 일자리를 창출하기 때문에 중요하지만 제조업은 더 강해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 교수는 사회 양극화를 줄이는 복지가 더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국은 유럽만큼 소득분배가 잘 돼 있는 나라 중 하나지만, 유럽이 소득 편차가 큰 대신 세금과 복지로 소득분배를 하는 것과 달리 한국은 규제를 통해 소득 단계에서부터 평등을 추구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어 “규제를 줄이는 대신 복지를 늘려야 시장경제를 활성화하는 동시에 양극화도 해소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영국에서 강의하는 장 교수는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 결정 이후 현지 분위기에 대해 “사람들이 가볍게 생각하고 찬반 투표를 하고서는 정작 결과가 나오니까 얼떨떨해하는 면이 있다. 구체적인 탈퇴 전략이 없었다는 데 황당해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세계 금융시장에서 영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2등으로 크기 때문에 걱정”이라며 “금융업 중심으로 영국에 들어오는 외국 자본도 줄면서 외환위기까지 올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어 “탈퇴 통보 시점부터 2년간 협상 기간을 지나는 2018년 말이나 2019년 초까지 불확실성이 지속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서귀포=강현우 기자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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