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에 자극 줘 기능 향상…뇌도핑·기계도핑 등장
금지약물 300가지로 늘어…합성약물·복제약까지 확대
[ 박근태 기자 ]
러시아 육상 선수들이 다음달 6일 개막하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출전하지 못하게 됐다. ‘테니스 여제’ 마리야 샤라포바는 앞으로 2년간 코트에 서지 못한다. 모두 도핑(doping) 검사에 걸린 사례다.
올림픽을 비롯해 국제 스포츠 경기에 출전하는 선수에게 경기 성적은 생명과 같다. 약을 먹고서라도 경쟁에서 이기고 싶은 유혹에 쉽게 빠져든다. 권오승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도핑컨트롤센터장은 “2000년대 초 150가지에 불과했던 금지 약물이 지금은 300가지로 늘어날 정도로 도핑 방법이 교묘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진화하는 도핑 약물
도핑은 도프(dope)라는 술 이름에서 유래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에 사는 수렵민족인 카필족이 사냥을 나서기 전 사기를 높이기 위해 알코올이 많이 포함된 도프를 마시고 그 힘을 빌려 사냥을 한 데서 비롯됐다. 가장 오래된 도핑 약물은 마전이란 식물 씨앗에서 얻는 스트리크닌이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 소설에 자주 등장하는 이 독성물질은 신경흥분제로 사용됐다. 카페인이나 코카인 등의 중추신경자극제나 헤로인 같은 마약 성분도 자주 쓰였다.
남성 호르몬인 테스토스테론을 증가시켜 근육량을 촉진하는 아나보릭스테로이드제는 대표적인 금지 약물이다. 하지만 상당수 약물은 원래 치료나 심신 안정을 위한 다른 목적으로 만들어진 게 많다. 일부 양궁 선수들이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복용한 베타 차단제는 원래 심박동수를 떨어뜨리는 부정맥 치료제다. 천식치료제인 베타2 길항제는 지방 대사를 촉진시켜 체중 감량에 효과가 있다. 최근에는 처음부터 도핑 테스트를 피하기 위해 설계한 약물도 등장했다. 이른바 ‘디자이너 드러그’다. 금지 약물과 비슷한 효과를 내지만 검사에 걸리지 않도록 다른 화학구조를 가진다. 도핑 효과를 보는 종목은 의외로 많지 않다. 지금까지 조사 결과에선 복싱과 보디빌딩, 육상, 수영, 사이클 등 일부 종목 정도다. 심리 안정이 필요한 양궁과 사격 종목에서도 적발된다.
약물을 쓰지 않고 뇌에 자극을 줘 신체 기능을 향상시키는 뇌도핑과 기계장치의 힘을 빌리는 기계도핑까지 등장했다. 미국 스키 및 스노보드협회는 스노보드 점프 선수 7명을 대상으로 전극으로 뇌에 전기를 통하게 한 결과, 전기 자극을 받은 선수들의 점프력과 균형 감각이 70~80% 향상됐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뇌 전기자극 줘 뇌도핑까지 등장
도핑의 부작용은 심각하다. 1886년 프랑스 보르도와 파리 사이의 600㎞ 사이클 경기에 참여한 선수는 코카인과 헤로인을 복용한 채 경기에 나섰다가 숨지면서 최초 도핑 潁좇막?기록됐다. 그 뒤에도 약물 복용에 따른 선수 사망자가 끊이지 않았다.
도핑 문제에 대한 국제적인 관리는 전례 없이 까다로워지고 있다. 세계도핑방지기구(WADA)에 따르면 올초 전 세계에서 35개였던 공인 도핑실험실이 반년 만에 27개로 줄었다. 금지 약물도 계속 추가되고 있다. 합성 약물 외에도 바이오시밀러(항체의약품 복제약)와 유전자 치료제, 세포까지 그 범위를 확대하고 있다. 권 센터장은 “점점 도핑의 영역에 약물과 장비의 힘 경계가 서로 섞이는 쪽으로 가고 있어 기존 방법은 한계점에 도달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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