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정 증권부 기자 yjlee@hankyung.com
[ 이유정 기자 ] “분식회계를 한 기업이 두 번씩이나 상장했다가 퇴출돼도 금융당국의 회계감리를 피해 갈 수 있는 게 우리나라의 현실입니다.”
금융감독원이 오는 9월까지 공인회계사 10명을 채용키로 한 데 대해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언 발에 오줌 누기에 불과하다”고 고개를 저었다. 대우건설 대우조선해양 등 대기업의 회계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는 상황에서 10명의 인력 충원으로 2000개가 넘는 상장사의 분식회계를 제대로 감시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는 것이다.
금감원이 부족한 예산을 쥐어짜내 인력을 확충하려는 것은 감리가 회계투명성에 미치는 영향이 그만큼 커서다. 현재 금감원의 회계감리 인력은 58명으로 지난 한 해 감리한 상장회사는 80여개에 불과하다.
국내 상장회사 한 곳당 회계감리 주기는 25년에 달한다. 한국 기업들의 상장유지기간이 평균 10년이 채 안 되는 점을 감안하면 특정 기업이 두 번이나 상장폐지를 당해도 회계감리를 피해갈 수 있는 셈이다. 동양그룹 사태를 수습하던 2014년에는 감리주기가 40년에 달했다.
반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는 4000명이 넘는 직원을 활용해 기업당 3년에 한 번꼴로 회계감리를 한다. 업계 관계자는 “미국은 ‘엔론 사태’를 계기로 감리주기를 획기적으로 단축한 2000년대 초 이후 단 한 건의 분식회계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주무부처인 금융위원회의 회계담당 조직 규모와 전문성도 문제로 지적된다. 회계제도와 공시·불공정거래·신용평가제도 등을 담당하는 공정시장과 사무관은 단 3명. 주무 사무관을 제외하면 회계 관련 업무만 전담하는 사무관은 한 명이다. 그나마 공인회계사 자격증을 가진 회계담당 사무관이 ‘정식 직원’이 된 것도 불과 지난해 말의 일이다.
회계업계 관계자는 “이전까지는 공인회계사 출신 사무관을 계약직으로 뽑아서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시 외부로 나가는 일이 반복됐다”며 “고시 출신 승진 문화 때문에 외부 출신이 자리를 잡기 어렵다 보니 자연스럽게 회계전문가 양성도 이뤄질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회계투명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금융당국 스스로 책임 있는 자세로 조직을 키우고 손에 흙을 묻혀야 한다고 지적한다.
한 회계 전문가는 “장기적이고 실질적인 대책을 마련, 추진하려면 금융위 내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과 담당 국·과장의 잦은 인사도 개선해야 할 과제”라고 강조했다.
이유정 증권부 기자 yjlee@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