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안 주고받기’를 가리키는 경제학 및 정치학 용어 ‘로그롤링(log rolling)’은 애초 좋은 뜻이었다. 말 그대로 통나무(log)를 굴린다(rolling)는 의미다. 벌목꾼이 산에서 큰 통나무 한 그루를 벴다고 치자. 한 그루만으로도 며칠 벌이가 될 듯하다. 하지만 차가 다니는 길까지 혼자서는 도저히 통나무를 운반할 수가 없다. 부득이 동료의 손을 빌릴 수밖에 없다. 통나무를 양 옆에서 굴리면 힘을 훨씬 덜 들이고도 길까지 내려보낼 수 있다.
벌목꾼은 동료가 원할 경우 동료의 통나무도 굴려 줘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왕따’를 당해 그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없다. 통나무 굴리기가 좋은 일에서만 나타난다면 과거 우리 농촌의 모내기처럼 일종의 품앗이라고 할 수 있다.
이해관계 따라 법안 밀어주기
하지만 정치 영역에선 정반대 의도로 통나무 굴리기가 이뤄진다. A정당이 발의한 법안이 필요 예산에 비해 효과가 작다든지, 그 자체로 문제가 있어 통과될 가능성이 희박한 경우 A정당은 B정당에 손을 내민다. B정당 역시 반대에 부딪쳐 통과가 어려운 법안이 있을 경우 A정당을 밀어주고 그 대가로 자신의 입맛에 맞는 법안을 통과시킨다. A정당이나 B정당 모두 합리적이고 반드시 필요한 법안을 제안할 경우 굳이 ‘로그롤링’에 나설 이유가 없다.
정치인들, 특히 국회의원들이 로그롤링에 나서는 것은 그들이 공익을 추구하는 자선가가 아니기 때문이다. 1960년대 공공선택론이란 경제학 분야를 개척한 제임스 뷰캐넌과 고든 털럭은 정치인들 역시 이익 추구자로 정의했다. 기업가들의 이익이 이윤 추구라면 정치인들의 이익은 다음 선거에서 재선 또는 다른 선거에서의 당선이다.
한국 국회에서도 로그롤링은 비일비재하다. 19대 국회 예만 들어보자. 2013년 새누리당(새)은 외국인투자촉진법을 새정치민주연합(민)의 상설특검법과 바꿨다. 2014년엔 정보통신 관련법안(새)과 방송법 개정안(민)의 거래가 추진됐다. 지난해엔 서비스산업발전 기본법(새)과 사회적경제기본법(민), 관광진흥법(새)과 생활임금법(민)의 주고받기가 시도됐다.
국민의당이 로그롤링 핵심될 듯
정치학과 공공선택론에선 양당제에서보다 다당제 의회에서 로그롤링이 더 횡행할 것이란 점을 상식으로 여긴다. 양당제에 비해 각 정당의 힘이 약하고, 주고받기를 할 대상도 많기 때문이다. 20대 국회 회기가 시작된 지 두 달도 채 안 된 시점에서 1000건 넘는 법안이 제출된 것도 이 때문이다. 새누리당이나 더불어민주당의 대표가 선출되는 다음달부턴 로그롤링이 본격 시작될 것으로 점쳐진다.
더 눈여겨봐야 할 것은 국민의당 행보다. 의석수는 38석이지만 새누리당에 붙느냐, 더민주에 붙느냐에 따라 법안심사를 주도할 수 있다. 투표 거래(vote trading)의 결정권(casting vote)을 쥔 곳이 국민의당이다. 국민의당은 이미 포퓰리즘적 성향을 드러내고 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분석한 20대 국회 119개 기업 규제법 발의안 중 국민의당이 제출한 법안이 24개였다. 의석수가 129석인 새누리당의 11개보다 두 배나 많다. 20대 국회에서 기업 규제 법률이 늘어날 것은 명약관화(明若觀火)하다.
박준동 산업부 차장 jdpowe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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