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정 금융부 기자) 이른바 ‘김영란법’으로 은행권 안팎이 들썩이고 있습니다. 헌법재판소가 그간 위헌 논란이 끊이지 않았던 ‘부정 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입니다.
‘3·5·10’(직무 연관성이 있을 때 식사 3만원, 선물 5만원, 경조사비 10만원 초과하면 처벌)으로 요약되는 김영란법은 지금까지 경조사비나 식사 접대 등 관행적으로 이뤄지던 일을 형사 처벌의 대상으로 삼고 있죠.
주요 농특산물을 생산해온 농·축산 농민과 어민들은 오는 9월부터 예정대로 김영란법이 시행되면 선물 수요가 급감해 매출에 직격탄을 맞을 것이라고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서울 시내 유명 식당들은 매출 부진을 걱정하면서 발 빠르게 가격을 낮춘 메뉴들을 준비하고 있고요.
이들에 비해 김영란법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떨어질 것 같은 국내은행 임직원들도 골머리를 앓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최근 만난 한 시중은행 임원은 “실무 직원들과 김영란법 시행에 따라 문제가 될 수 있거나 재검토가 필요한 사업 및 크고 작은 이슈들을 정리하고 있다. 아직도 모호한 부분이 너무 많고 저촉되는 사안들이 광범위해 꼼꼼하게 따져보고 있다”고 말하더라고요.
은행들은 자산가나 기업가 등 우수고객(VIP)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골프 등 스포츠나 연극 등 문화 행사, 경우에 따라서는 각종 사은품도 적극 활용합니다. 김영란법 시행으로 앞으로 은행들은 VIP 마케팅을 하려면 미리 고객의 배우자 직업을 확인해야만 합니다. 고객의 배우자가 공무원이나 교직원일 경우 문제가 발생할 수 있어서입니다.
사실 은행들은 교사나 공무원 등을 대상으로 한 마케팅에 공을 들여왔습니다. 꼬박꼬박 급여가 들어와 신용도가 상대적으로 우수한 데다 연체율은 낮은 편이라 은행들에는 ‘탐나는’ 고객군일 수밖에 없거든요.
이들을 대상으로 한 특정 금융상품까지 지속적으로 출시할 정도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각종 사은품 제공은 물론 이들을 대상으로 진행하던 투자 세미나도 쉽지 않아졌습니다.
여기에 은행들이 발행하는 정기 간행물도 김영란법의 적용 대상이 되는 언론 범주에 속할 수 있어 고민이 많다고 합니다. 은행들은 소비자들에게 금융정보 서비스 제공 차원에서 금융상품 및 시장 동향 관련 잡지를 내고 있습니다. 이런 정기 간행물이 언론으로 분류되면 은행들도 졸지에 언론사 취급을 받게 됩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일단 올 하반기에 잡힌 각종 골프 행사나 투자 세미나 일정들은 가급적 취소하거나 규모를 축소하는 방안을 고려하고 있다. 시행 첫 해인만큼 분위기를 살피면서 문제가 될 여지는 없애는 게 낫다고 판단한다”고 귀띔하더라고요.
관행과 습관, 문화를 바꾸는 건 그 어떤 변화보다 어려운 게 사실입니다. 김영란법 시행에 따른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란 얘기죠. 어찌 됐든 김영란법 시행을 둘러싸고 한동안 금융권 안팎에서 많은 혼란과 시행착오가 예상됩니다. (끝) / ke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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