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사내유보금은 현금이라고 오해 말아야

입력 2016-08-01 18:10  

사내유보금은 금고에 쌓아둔 돈?
내부에서 투자금 조달했다는 의미
새 용어 만들어 오해 차단해야

황인태 < 중앙대 교수·경영학 >



최근 기업의 사내유보금에 관한 논의가 활발하다. 얼마 전 국내 5대 기업집단의 사내유보금이 10년 만에 3배 정도 늘어나 370조원 규모가 됐다는 보도가 있었다. 이를 두고 기업이 이익을 남긴 뒤 투자하지 않은 채 곳간에 쟁여놓고 있는 게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장기침체 국면의 국가 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해 기업들이 쌓아놓은 사내유보금으로 투자를 하도록 적극적으로 유도해야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의 과다한 사내유보금을 방지하기 위해 기업소득환류세제를 도입했지만 시행 첫해인 작년 기업들이 투자나 임금인상보다 배당을 늘리는 방법으로 과세를 피해간 것으로 전해지면서 기업소득환류세제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기업소득환류세제를 한층 강화하고 법인세도 인상해야 한다는 주장이 잇따르는 이유다.

회계를 공부하는 사람으로서 이런 사내유보에 관한 논쟁은 당혹스럽다. 우선 사내유보라는 용어는 회계학 교과서 어디에서도 사용되지 않는 용어이며 둘째, 국내 기업의 사내유보가 계속 증가하고 있고 또 너무 높다는 주장 그리고 가장 중요한 셋째, 사내유보에 대한 일반인의 오해가 그렇다.

사내유보는 회계학 용어가 아니다. 학술적이거나 법률적인 용어가 아니며 편의적으로 사용되는 말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오류가 발생하는 게 사실이다. 기업의 사내유보율이 시간에 따라 커지고 있으며 너무 높다는 주장도 그렇다. 사내유보금은 기업 창립 이후 당기순이익에서 주주배당을 차감한 금액을 매해 합산한 것(손익거래)과 자본거래에서 발생한 잉여금(자본거래)을 회계적으로 기록한 것이다. 따라서 건실한 기업이라면 시간이 경과함에 따라 사내유보금이 지속적으로 늘어나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더라도 한국 기업의 유보율은 전혀 높지 않다. 유보율에 관한 7개국 비교에서 국내 대기업은 독일 일본 영국 미국에 이어 5위이며 중기업은 영국 일본에 이어 3위, 소기업은 일본에 이어 2위다. 유보율의 절대수치는 대기업 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국제 비교에서는 오히려 소기업이 높은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마지막으로 사내유보는 회사 내에 남아 있는 현금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사전적 의미로 사내유보의 사내는 ‘기업 내’를 뜻하고, 유보는 ‘당장 처리하지 않고 남겨 둔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내유보금은 손으로 만질 수 있는 현금이 아니다. 사내유보금을 투자로 돌리라는 주장은 이미 투자한 자금을 다시 투자하라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내유보는 기업이 외부가 아니라 내부에서 투자자금을 조달했다는 의미다. 사내유보금으로 기록돼 있는 수치는 현금뿐만 아니라 토지, 기계설비 등에 이미 투자돼 기업활동에 기여하고 있는 것을 나타낸다. 국내 상장회사의 총자산 대비 현금성자산비율은 1990년 6.1%에서 2015년 3.5%로 크게 줄었다. 이는 미국의 7.0%에 비해 현저히 낮아 사내유보의 증가로 현금성자산비율이 급격히 늘어났다는 세간의 주장과는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면 한국 기업의 총자산 대비 유형자산비율은 28.3%로 미국의 19.9%에 비해 현저히 높았다. 이는 국내 대기업들이 사내유보 증가로 현금자산을 늘리고 실물투자를 줄여 국가경쟁력이 저하됐다는 주장이 맞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내유보금에 관한 일련의 주장은 사내유보금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따라서 사내유보금에 대한 더 이상의 오해를 막아야 한다. 사내유보란 용어의 의미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재정립해야 한다. 무엇보다 사내유보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용어 제정이 시급하다.

황인태 < 중앙대 교수·경영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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