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aw&Biz] UAE 거부(巨富) 만수르와 소송…나랏돈 2400억 지킨 김앤장의 8인

입력 2016-08-02 17:35  

국제중재팀, ISD 소송서 만수르 회사 대리 미국 대형로펌과 '맞짱'
꼼꼼한 반박논리에 재판부 성향까지 분석…소송취하 이끌어
ISD 소송서 한국 정부 승리 첫 사례…유사소송에도 영향줄듯



[ 고윤상 기자 ]
지난달 26일 윤병철 김앤장 법률사무소 국제중재 공동팀장에게 낭보가 날아들었다. ‘하노칼, ISD 취하’. 아랍에미리트(UAE) 부호 만수르의 회사로 잘 알려진 하노칼이 한국 정부를 상대로 제기한 2400억원대 투자자국가소송(ISD)을 중도에 포기한 것이다. 김앤장조차 예상하지 못한 희소식. ISD에서 한국 정부가 승리한 첫 사례로 기록됐다.

이번 결과로 이자를 빼고도 2400억원이 넘는 국부(國富) 유출을 막아냈다. 국제중재 변호사들은 “미국계 초대형 로펌인 ‘화이트앤드케이스’를 상대로 소송 취하를 이끌어낸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놀라워했다.


ISD는 해외 투자자가 투자 대상 국가의 법령이나 제도, 정책에 피해를 봤을 때 양자간투자협정(BIT) 또는 자유무역협정(FTA) 등을 근거로 해당국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는 제도다. 하노칼은 2010년 현대오일뱅크 주식 매각에 따른 양도차익에 대해 국세청이 과세한 2400억원이 한·네덜란드 투자보호협정을 위반했다며 지난해 4월 국제투자분쟁해결기구(ICSID)를 통해 ISD를 제기했다.

하노칼이 선택한 ICSID는 국제상거래법위원회(UNCITRAL) 등 비공개로 소송을 진행하는 중재기관과 달리 소송 내용과 진행 상황을 홈페이지에 공개한다. 이 때문에 피신청자인 정부는 피소 사실이 노출된다는 부담을 안는다. 또 ICSID 중재 절차 규칙에 따라 정부는 중재신청서에 대한 공식적인 답변서를 제출할 기회가 없다. 중재가 제기된 뒤 1년이 지나도록 정부 측 반박을 상대방이나 중재재판부에 전달할 수 없다는 의미다. 소송을 제기하는 투자자에 유리한 절차구조다.

김앤장 국제중재팀은 이런 절차적 불리함을 역이용했다. 피소 직후인 지난해 5월 사건을 맡은 김앤장은 국제조세 전문가와 국제중재 전문가 등 8명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렸다. 법적인 쟁점에 대비하는 동시에 절차에서도 상대방의 허를 찌르는 ‘빨리빨리’ 전략을 구사했다. 평균 3~5년이 걸리는 중재 절차를 2년 이내로 줄이자고 제안한 것이다.

윤병철 변호사는 “ICSID 절차의 불리함을 오히려 역으로 이용하기 위해 관련 절차를 대폭 줄여 내년 12월까지 최종 심리를 끝내자고 제안했다”며 “상대방이 당황할 만큼 자신있게 나설 수 있던 것은 팀에 전문가들이 합류해 조기에 사건의 쟁점을 파악하고 반박논리를 구축해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하노칼 측은 이 사건을 외국계 펀드에 대한 차별적 과세 문제로 접근하려 했다. 김앤장은 이 사건의 본질을 국내 조세소송의 연장에 불과하다고 파악하고 반박 논리를 구축했다.

지난해 8월 “과세에 문제가 없다”는 원심을 확정한 대법원 판결도 힘을 보탰다. 중재 결정을 내리는 의장중재인 선정에도 공을 들였다. 의장중재인 후보자의 성향을 분석한 뒤 지난 3월 공정한 중재 절차 진행으로 인정받는 독일의 클라우스 삭스 교수를 의장중재인으로 선임했다.

김앤장의 빨리빨리 전략은 주효했다. 윤 변호사는 “하노칼은 한국 정부의 반박 논리를 수개월 내에 재반박하고 관련 증거를 제출해야 하는 상황이었다”며 “정부의 빠른 지원과 팀원들의 신속·정확한 전문성이 하노칼을 포기하게 했다”고 말했다. ICSID에 따르면 ICSID 분쟁 중 일방적 취하로 종결되는 비율은 9.7%에 불과하다.

한국 정부가 ISD에서 승리하면서 향후 비슷한 ISD를 방지하는 효과도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인도 등 다수의 외국계 펀드 투자자가 유사 쟁점의 조세 조약 관련 중재를 제기하려는 움직임에도 제동을 걸었다.

윤 변호사는 “이번 결과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국부 유출을 막았다는 보람을 느낀다”며 “정부도 조세 행정의 국제 신뢰를 얻고 향후 ISD까지 방지하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은 셈”이라고 강조했다.

고윤상 기자 k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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