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터널' 하정우가 부르는 '生'의 찬가…'먹방'은 거들 뿐

입력 2016-08-04 08:00   수정 2016-08-05 12:08

영화 '터널' 8월 10일 개봉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주연




“도롱뇽이 아니라 '사람'이 갇혀있다고요. 자꾸 까먹는 것 같은데 저 안에 ‘사람’이 있어요.”

하정우의 가슴을 친 것은 다름 아닌 오달수의 대사였다. 영화 ‘터널’을 관통하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김성훈 감독은 말했다. ‘재난’이라는 것은 순식간에 찾아온다고. 맞다, 사고는 항상 갑작스럽다. '터널'은 우리 모두에게 일어날 수 있을법한 이야기다. 지난 몇 해 동안 우리는 이미 많은 일을 겪어오지 않았나.

영화는 우리가 매일같이 지나다니던 터널이 붕괴하고 무너진 홀로 고립된 한 남자의 생존기를 그렸다. 2013년 발간된 소설 ‘터널'(작가 소재원)이 원작이다.

평범한 자동차 영업사원 정수(하정우)는 딸의 생일을 맞아 퇴근길을 재촉한다. 동난 기름을 채우려 들린 주유소에서 귀먹은 노인 아르바이트로 인해 생수 두 병을 ‘득템’ 한다. 아이를 위한 생일케이크와 공짜 생수 두 병은 곧 그의 ‘전부’가 된다.

영화는 군더더기 없이 빠른 속도로 전개된다. 상영시간 10분이라도 늦어버리면 이미 터널은 붕괴한 상태다. 붕괴된 터널에서 정수는 이제 ‘살아남는 일’ 밖에 할 일이 없다. 좁은 차 안과 어둠, 고독에 적응하는 순간에도, 터널 밖은 아수라장이다.

정수의 구조를 둘러싼 터널 밖의 상황은 한국 사회의 단면을 날카롭게 꼬집는다. 단독 보도에 혈안이 된 언론은 홀로 남은 정수에게 시청률을 목적으로 한 질문을 던지기에 급급하다. 구조 시기는 명확하지 않고, 배터리 잔량은 고작 78%뿐인데 말이다. “방송이 중요하냐, 사람이 중요하냐. 이 쉬운 질문에도 답을 하지 못하냐”라고 기자를 질타하는 이는 구조대장 대경(오달수)이 유일하다.

정부의 고위 관계자들은 재난 현장의 단골손님이다. 실질적인 구조는 뒷전, 윗선에 보고가 먼저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세현(배두나)을 붙잡고 돌아가며 기념 촬영을 하기 바쁘다. 어딘가 익숙한 풍경이다. 제대로 된 대처 매뉴얼 없이 우왕좌왕하며 시간을 허비하는 터널 밖 사람들의 모습은 1년 같은 1분을 보내고 있는 정수와 극명하게 대조된다.

별다른 성과 없이 구조 작업이 지지부진하자 국민의 반응은 점점 무관심으로 변한다. 정수는 구조대의 약속만을 간절히 기다리지만, 밖의 사람들은 계산기를 두드리며 예측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영화 ‘터널’은 일반적인 재난 영화의 공식을 벗어나 색다른 장르적 비틀기를 시도한 노력이 보인다. 물론 하정우, 오달수라는 배우의 캐스팅은 감독의 ‘한 수’임이 틀림없다. '툭'하고 내팽겨쳐지는 유머에 관객은 실소한다. 특히 하정우가 마실 물이 떨어졌?때, 함께 목이 탔다. 이처럼 진정성과 유머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들 수 있는 몇 안 되는 배우들이다.

지난 3일 진행된 영화 ‘터널’ 시사회에서 김성훈 감독은 “2시간 동안 무겁고 칙칙한 부분을 감내할 자신이 없었다”면서 개봉 전 들뜬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김 감독은 “웃음이 암을 치료하지는 못하더라도 ‘힘’을 준다고 하지 않나. 극한 상황 속에서 자연스럽게 유발되는 웃음과 아이러니를 전달하고 싶었다”라고 말했다.

하정우는 “’나라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캐릭터에 접근했다”라고 말문을 열었다. “시나리오를 보면서 감독님이 공을 많이 들인 느낌을 받았다. 정수를 나에게 대입시켜봤더니, 터널에 갇혔다고 해도 온종일 울고만 있지 않았을 것 같다. 정수라는 인물이 느슨하게 행동하면 상황이 더욱 극대화돼 느껴질 것 같았다. 조금 더 유연해지려고 신경을 썼다.”

오달수는 “하정우가 강아지에게 욕을 하고는 '꿈꿨어요'하고 외치는 장면이 시나리오에 있던 것이냐고 물어봤다. 역시 애드립이라고 하더라. 급박한 상황이지만 나도 재미있게 하려고 노력했다. 썰렁한 부분이 조금 보이지만 이번 역할에 만족한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냈다.


영화에서 눈물샘을 공략하는 이는 단연 배두나다. 갑작스러운 남편의 사고에도 의연하게 대처한다. 민낯의 얼굴은 가공되지 않은 호소력을 자아낸다. 하정우는 “감독님의 캐스팅이 놀라울 정도로 좋았다”라고 치켜세웠다.

하정우는 “배두나는 멋진 배우다. 시원시원하고 꾸밈이 없다. 첫인상에서 굉장히 묵직한 느낌을 받았다”라면서 “굉장히 클래식한 면도 있다. 간식을 바리바리 싸와서 스태프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를 나눈다. 나를 돌아보는 계기가 됐다”라고 칭찬했다.

오달수는 “배두나가 몰입하는 순간에는 가까이 갈 수가 없었다. ‘컷’을 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라고 거들었다.

하정우는 이번에도 먹었다. 전작들이 한입에 야무지게 먹어치우는 방식이라면, ‘터널’에서는 35일 동안 나누고, 또 나눠 먹었다. 터널 속 공중에 부유하는 분진부터 물 2병, 케이크가 전부였지만 하정우 ‘먹방’ 그래피의 한 획을 긋는 장면이 아닐까 싶다.

터널 안에는 정수 외에 살아있는 생명체가 존재했다. 바로 퍼그 ‘탱이’다. “기적 같은 시간이 아닌가 싶다. 첫 테이크였다. 탱이와 사료를 나눠 먹어야 했다. 이 친구를 앞에 앉혀 높고 개 사료를 주고받았는데 기적적으로 찍힌 거다. 운이 참 좋은 것 같다.”

4개월간 하정우는 무너진 터널처럼 최대한 리얼하게 표현된 현장에서 지내야만 했다. 사방이 막혀있어 단 4대의 카메라만이 하정우의 얼굴, 뒷모습, 손동작을 담아내야만 한 것. 그는 “생각보다 나쁘지는 않았다”라고 현장 상황에 대해 털어놨다.

“촬영을 장기간 지속해 분진을 많이 마시게 됐다. 폐 CT를 찍어 본 것 말고는 없었다. 세팅이 굉장히 정교해서 차 안에 들어가려고 하면 20~30분이 걸린다. 그게 귀찮아서 그냥 차 안에 찌그러져 있었다.”

영화는 이렇게 ‘생명’의 존엄성에 대해 끊임없이 강조한다. 나아가 미비한 사회안전망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킨다. 김성훈 감독은 “조선 시대에도 그렇고 풍자는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 왔다. ‘터널’은 가려운 곳을 긁어주고 자연스럽게 현실을 돌아보는 영화가 아닐까 한다”라고 설명했다.

“단순한 이야기다. 현실에 있을 법한 리얼한 재난 상황을 통해 인간이 ‘생명’을 대하는 태도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좋겠다.”

아쉬운 점은 있다. 긴 러닝타임동안 쫀쫀하게 끌고 온 수고만큼 엔딩은 극적이지 못했다는 평가다. 또 하나는 배두나다. 그는 극에 묻혀야 할 부분에서 힘을 빼고, 도드라져야 할 부분에서 힘을 확실히 줬다. 할 때는 했다는 말이다. 단지 '할리우드', '패셔니스타'와 같은 화려한 이미지를 먼저 떠올리는 대중이라면 호불호가 극명하게 나뉘지 않을까 예상된다.



영화 ‘터널’ |김성훈 감독 |하정우 오달수 배두나 출연 |12세 관람가 |러닝타임 126분 |8월 10일 개봉


김예랑 한경닷컴 기자 yesr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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