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뇌전증은 곧 비극? 누군가에겐 예술혼의 원천

입력 2016-08-04 17:33  

뇌과학자들
샘 킨 지음 / 이충호 옮김 / 해나무 / 534쪽 / 2만원



[ 박근태 기자 ] 지난달 31일 부산 해운대에서 한 차량이 광란의 질주를 해 4명이 사망하고 13명이 다쳤다. 사고를 낸 운전자는 한때 ‘간질’로 불리던 뇌전증을 앓는 환자였다. 뇌전증은 뇌 손상이나 대뇌피질 이형성증, 뇌종양, 뇌경색 등으로 인해 뇌에 비정상 전기파가 생겨 경련성 발작을 일으키는 질환이다.

뇌전증이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는 사례가 많지만 역사적으로 보면 꼭 그렇지도 않다. 오히려 어떤 이들에겐 삶에 도움을 준다. 발작을 처음 겪은 사람 중에는 갑자기 그림을 더 잘 그리게 되거나 시를 잘 이해하게 되는 경우도 있다. 러시아 문호 도스토예프스키는 뇌전증을 앓았다. 신경과학자들은 그가 앓은 측두엽(관자엽) 뇌전증이 예술적 천재성과 관련있다고 분석한다. 흔히 참을 수 없는 글쓰기 충동을 ‘하이퍼그라피아’라고 하는데 이 증세가 나타나는 대표적 질병이 측두엽 뇌전증이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소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 상처받은 사람들에서 발작의 고통을 자세히 묘사하면서 황홀한 경험을 즐겼다. 감정과 관련있는 변연계 연결 구조에 변화가 생기면 인근 측두엽은 외부 자극에 민감해진다. 어떤 이유에선지 측두엽에서 기원한 발작은 감정을 더 풍부하게 하고 초자연적 힘을 느끼게 할 때가 많다. 도스토예프스키는 지인들에게 종종 “그런 즐거움은 보통 사람의 삶에선 결코 상상할 수 없는 것”이라며 “단 몇 초만 느낄 수 있다면 삶을 통째로 내줘도 아깝지 않다”고 말하기도 했다. 뇌 질환은 종교적 신앙을 굳건하게 하기도 한다. 뇌전증 환자 중에는 도덕에 집착하고 유머감각을 완전히 잃는 사례가 많은데 갑작스러운 환각과 결합하면서 신앙에 깊이 빠지는 것이다.


저명한 과학저술가 샘 킨은 《뇌과학자들》에서 도스토예프스키처럼 역사적 사례를 통해 인류가 뇌를 어떻게 더 많이 이해하게 됐는지를 들려주며 뇌과학의 역사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낸다. 무엇보다 뇌를 다친 환자에게서 얻은 통찰이 뇌 연구에 얼마나 큰 진보를 가져왔는지 소개한다. 실제로 마상 창시합에서 부러진 창에 눈을 맞아 어이없게 죽은 프랑스 왕 앙리 2세의 부검을 통해 뇌진탕의 존재가 처음 규명됐다.

뇌과학자들은 환자가 뇌를 다친 이후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살펴봄으로써 뇌 영역이 정확하게 어떤 일을 하는지를 하나하나 밝혀냈다. 기억상실증, 실어증, 망상, 병적 거짓말, 조현병과 같은 이상 행동이 뇌 속 작은 회로의 고장에서 비롯됐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뇌의 방추 얼굴 영역이 손상되면 얼굴을 알아보지 못하고, 편도체가 손상되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사라지며, 이마엽이 손상되면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기 시작한다. 변연계가 망가진 환자는 색정증이나 소아성애, 동물성애와 같은 문제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 때문에 뇌졸중이나 뇌 수술 실패, 사고 등을 겪은 환자의 삶은 극적으로 바뀐다. 다른 사람이 모두 가짜라고 믿거나, 말을 할 수는 없어도 노래는 부를 수 있거나, 자신에게 세 번째 팔이 달렸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사람은 여러 감각이 기묘한 방식으로 결합해 냄새에서 소리를 듣거나 질감에서 색을 보는 능력을 새롭게 얻는다.

이 모든 이야기는 수면마비증(가위눌림)을 앓고 있는 저자의 경험에서 시작됐다. 저자는 잠에서 깨도 몸은 옴짝달싹 못 하는 공포스러운 상태가 뇌 속 커뮤니케이션의 문제로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기억상실증, 실어증, 망상, 병적 거짓말, 조현병 등에 관심을 두게 됐다. 저자는 “손상된 뇌야말로 어쩌면 현대 첨단 의학기기인 기능성자기공명영상(fMRI)보다 인간의 뇌 기능을 더 정확히 볼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했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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