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 자치구 예산 부족
단속 인원 5명 안팎 불과
그나마도 사법권 없어 과태료 부과 실랑이 겪어
서초구, 2012년 전담팀 구성
과감한 단속으로 성과 올려
[ 김동현 / 황정환 기자 ] ‘6938건’ 대 ‘0건’.
서울 서초구와 은평구가 올 상반기에 실외 금연구역에서 적발한 흡연 건수다. 영등포구와 노원구, 송파구가 1000건 이상의 단속 실적을 올린 것과 달리 중랑구 강서구 용산구 등은 단속 건수가 5건 이하에 그쳤다. 구청별로 흡연 단속 실적이 천차만별인 까닭은 무엇일까. 취재 결과 구청장의 의지와 단속 인원에 따라 실적에 차이가 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서초구청은 유흥가 밀집 지역이 많은 탓에 금연관리 전담팀을 신설하기도 했다. 노원구는 전 공무원이 금연 단속에 나선다.
◆주목받는 서초구와 노원구의 실험
5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서울 25개 자치구는 올 들어 실외 금연구역에서 1만3175건(상반기 기준)의 흡연을 적발해 과태료를 부과했다. 구청별로는 서초구가 6938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영등포구(1644건) 노원구(1611건) 송파구(1074건) 강동구(400건) 순이었다. 이에 비해 중랑구(5건) 강서구(4건) 용산구(2건) 강북구(0건) 은평구(0건) 등은 단속 실적이 거의 없었다.
금연구역은 크게 둘로 나뉜다. PC방이나 음식점 등 실내 공중이용시설은 국민건강증진법에 따라 흡연이 금지돼 있다. 이에 비해 실외 금연지역은 지방자치단체가 조례를 정해 지정할 수 있다. 간접흡연에 따른 피해를 막기 위한 조치인데, 현실에선 단속이 쉽지 않다는 게 구청들의 고민이다. 실외 금연구역 단속 실적이 ‘제로’인 은평구와 강북구만 해도 실내 금연지역에선 올 상반기에 각각 164건, 196건의 단속 실적을 올렸다.
구청별로 실외 금연단속 건수에 차이가 나는 가장 큰 이유는 구청장의 단속 의지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는 게 구청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서울에선 서초구가 단속 직원이 18명에 달해 독보적이다. 이 구청은 강력한 금연정책을 내걸고 2012년 전국에서 처음 금연관리전담팀 신설하는 등 과감한 투자를 해왔다. 이와 달리 대부분의 다른 구청은 금연 단속원이 2~7명으로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금연구역이 늘고 있는 실정이다. 은평구와 강북구의 금연단속원도 4명, 2명에 불과하다.
노원구는 전담 단속인력(5명) 외에도 모든 부서 공무원이 금연 단속에 나서고 있다. 김정재 노원구 주무관은 “하루평균 18명씩 특정 구역을 정해 단속하고 있다”며 “과태료를 부과해 얻은 수입은 2014년부터 시행 중인 ‘금연도시 프로젝트’ 예산으로 쓴다”고 말했다. 노원구가 시행 중인 금연도시 프로젝트는 24개월간 금연에 성공하면 최대 30만원을 지급하는 것이다.
◆‘흡연과의 전쟁’ 벌이는 구청들
실외 금연단속 지역에선 과태료 ‘딱지’를 떼려는 구청직원과 이에 저항하는 흡연자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는 일이 잦다. 영등포구는 2014년 여의도 한국거래소 인근 K어린이집 10m 내를 금연구역으로 지정했다. 하지만 이날 낮 찾아간 어린이집 인근은 담배를 피우는 직장인이 몰려 흡연실을 방불케 했다. K어린이집 관계자는 “흡연자들이 10m를 살짝 벗어난 곳에서 담배를 피워 단속원들도 어쩌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실외 금연구역 단속은 먼저 카메라로 동영상을 찍어 증거를 확보하고 단속원이 신분증을 확인한 뒤 과태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명백한 증거가 있는데도 발뺌하는 시민이 대다수여서 단속 직원들이 애를 먹고 있다. 구청 직원은 사법권이 없기 때문에 흡연자가 계속 혐의를 인정하지 않으면 경찰의 도움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일각에선 구청들이 단속인력 확충 등 인프라를 갖추지 않고 무작정 실외 금연구역을 늘리기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서울의 실외 금연구역은 2011년 670곳에서 지난해 1만3343곳으로 늘어났다. 5년 새 20배가량으로 증가한 셈이다. 다음달부터는 시장·구청장이 아파트의 복도, 계단, 지하주차장 등 공용시설에 대해 거주 주민의 요청을 받아 금연구역으로 지정할 수 있게 돼 금연구역은 더 빠르게 늘어날 것이란 예상이다.
흡연자들의 불만도 커지고 있다. 구청들이 금연구역을 늘리고 있지만 흡연자를 위한 시설에는 별 관심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서울 자치구가 운영하는 실외 흡연부스는 34개에 불과하다. 회사원 박모씨(35)는 “서울 도심에선 건물주가 있지도 않은 사설 금연구역을 정해 과태료를 부과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며 “금연구역임을 쉽게 알 수 있도록 지자체가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동현/황정환 기자 3cod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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