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옛날에 한 남자가 종로거리의 담배가게에서 어떤 사람이 소설 읽는 것을 듣다가, 영웅이 가장 실의하는 대목에 이르러서 갑자기 눈을 부릅뜨고 입에 거품을 물고는 담뱃잎 써는 칼로 소설 읽던 사람을 찌르니, 바로 죽었다. 종종 이처럼 맹랑하게 죽는 일이 있으니 우스운 일이다.”
조선시대 실학자 이덕무의 시문집 《아정유고》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길거리에서 소설 읽어주는 것을 듣다가 내용에 너무 빠진 나머지 이야기꾼을 죽였다는 것. 당시 사람들이 소설에 얼마나 열광했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국립중앙도서관이 9일 시작하는 기획전 ‘조선의 독서열풍과 만나다:세책과 방각본’(사진)은 18세기 이후 붐을 이룬 조선의 소설 읽기 문화를 확인할 수 있는 자리다. 오는 10월2일까지 열리는 이번 기획전에는 대여용으로 제작한 필사본 ‘세책(貰冊)’, 목판을 이용해 대량으로 찍은 ‘방각본(坊刻本)’ 등 고문헌 59종을 선보인다. 세책과 방각본은 대부분 한글로 쓴 소설이었다. 전시실엔 당시 세책을 빌려주던 상점과 이들이 몰려 있던 저자거리를 재현했다. 옛 거리를 거닐듯 세책점과 세책거리를 둘러볼 수 있다.
5부로 구성된 전시의 1~2부에서는 조선시대 출판문화를 개괄적으로 조명한다. 3부에서 세책점과 세책거리를 둘러보고 4부에서는 서울 전주 안성에서 간행된 방각본과 목판을, 5부에서는 새로운 인쇄기술이 도입되면서 저렴해진 세책과 방각본을 볼 수 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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