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전 확률 1% 뚫고 기적같은 금메달
어려운 가정형편속 펜싱 사랑
작년 무릎 수술받고도 '꿋꿋'
"세계인의 축제 나도 즐겼다"
긍정의 힘으로 인생도 역전
[ 최진석/유정우 기자 ]
“전략 같은 건 없었습니다. 올림픽은 세계인의 축제잖아요. 저도 즐겼습니다.”
펜싱 막내 박상영(21·한국체대·사진)이 10일(한국시간) 금메달을 따낸 직후 “어떤 전략으로 싸웠느냐”는 질문에 답했다. 세계랭킹 21위인 그가 세계랭킹 2, 3위를 모두 꺾는 역전 드라마를 썼다. 결승전에선 1점만 내주면 지는, 벼랑 끝에 내몰렸지만 박상영은 포기하지 않았다. 거짓말 같은 5점 연속 득점으로 처음 참가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펜싱 입문을 방해한 가난도, 선수 생명을 위협한 부상도, 세계무대를 호령하는 선수들도 경기를 즐기는 박상영의 신바람 난 검술을 막을 수 없었다.
◆세계랭킹 21위의 통쾌한 반란
박상영은 이날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경 袖?에서 열린 남자펜싱 에페 개인 결승전에서 한국에 세 번째 금메달을 안겼다. 박상영의 활약 덕분에 한국 펜싱은 2012년 런던올림픽에 이어 2회 연속 금메달을 수확했다.
결승전으로 가는 길도 험난했다. 박상영은 16강전에서 세계랭킹 2위 엔리코 가로초(이탈리아)를 만나 힘겹게 이겼다. 8강에선 10위 막스 하인처(스위스)가 기다리고 있었다. 결승전 상대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 동메달, 지난해 세계선수권대회 금메달리스트인 세계랭킹 3위 게저 임레(헝가리)였다. 1세트 초반 0-2로 뒤진 박상영은 5-5 동점을 이뤘다. 2세트에서 도망간 임레를 다시 따라잡아 9-9 두 번째 동점이 됐다. 이후 임레는 내리 4점을 뽑았다. 9-13으로 균형이 깨졌고, 한 점씩 주고받아 10-14가 됐다. 드라마는 여기서 시작됐다. 박상영은 서둘러 경기를 끝내려는 임레의 공격을 막고 찔렀다. 14-14 세 번째 동점. 박상영은 임레의 허점을 노린 기습적인 찌르기에 성공했다. 15-14 대역전 드라마가 완성되는 순간이었다.
펜싱에서 에페는 몸의 전 부위를 득점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득점 확률이 높다. 서로를 동시에 찔러도 1점씩 획득할 수 있다. 플뢰레는 상대의 몸통 부위를 칼끝으로 가격했을 때 득점으로 인정한다. 사브르는 허리 위를 칼끝 또는 칼날로 가격해 점수를 올린다. 박상영이 온몸을 방어하면서 5점을 내리 따낼 확률은 1% 미만이었다. 관중들은 국적을 가리지 않고 눈앞에서 역전승한 그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불굴의 투지로 인생도 역전 드라마
금메달을 따낸 그에겐 눈물 대신 환희만 있었다. 애국가가 울려퍼진 시상대에서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웃음 뒤엔 그가 남몰래 흘린 눈물이 있었다. 그는 지난해 3월 왼쪽 무릎 십자인대 수술을 받았다. 훈련은 그해 12월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실력이 수술 전보다 떨어졌다. 과한 훈련을 하면 어김없이 다리가 부었다. “박상영이 끝났다”는 말이 들렸다.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다. 칭찬에 목말랐던 박상영이 펜싱을 하면서 가장 많은 칭찬을 받았기 때문이다. 진주제일중 2학년 때 현희 코치의 권유로 펜싱을 시작했다. 당시 그의 집안은 사업 실패로 어려웠다. 부모도 반대했다. 그럴수록 사춘기 소년 박상영은 펜싱에 더욱 몰입하면서 어려움을 극복했다. 결국 어머니 최명선 씨는 아들의 펜싱 사랑을 받아들였다. 최씨는 리우올림픽 대표로 선발된 아들을 응원하기 위해 전국의 사찰을 돌며 108배를 했다.
박상영은 “꿈에서는 올림픽 금메달을 세 번 이상 땄다”고 말했다. 그만큼 올림픽 금메달에 대한 열망이 강했다. 그는 오는 15일 에페 단체전에 출전, 두 번째 ‘금메달 찌르기’에 나선다.
최진석/유정우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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