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하상 지음 / 클라우드나인 / 304쪽│1만5000원
[ 최종석 기자 ] 일본의 혼수용품 전문점 겐다는 771년에 창업한 교토 최고(最古)의 가게다. 종이공예, 칠기 등 일본 내에서 가장 전통적인 혼수용품을 생산한다. 이 상점과 연결된 전문 작가가 하나하나 손으로 최상의 상품을 만든다. 프랜차이즈를 통해 수많은 지점을 거느린 다른 혼수용품점과 달리 자그마한 가게 하나가 전부다. 그 희소가치 때문에 겐다의 혼수용품은 일본에서 가장 비싸다. 최상의 품질, 최고의 가격 전략을 유지하며 1300년에 가까운 역사를 이어온 것이다.
교토에는 이처럼 1000년 이상 된 가게가 6개 있다. 200년 이상 된 가게는 1600개에 달한다. 100년 이상 된 가게는 너무 많아 집계가 안 될 정도다. 그들은 오랫동안 장사해오면서 ‘교토식 상법’을 개발했다. 세라믹 필터의 강소기업 교세라, 세계적 게임업체 닌텐도, 일개 연구원이 노벨상을 탄 시마즈제작소, 일본전산, 와코루, 호리바제작소 등 자신의 분야에서 세계 최강의 기업들이 교토에 본사를 두고 있다.
《어떻게 지속성장할 것인가》는 논픽션 전문작가인 홍하상 전국경제인연합회 교수가 오래된 교 ?상점들을 소개하며 지속성장의 비결을 밝힌 책이다. 지난 20년간 일본의 불황에도 교토 상인들이 흔들림 없이 어떻게 자신의 길을 걸어왔는지도 분석한다.
교토 장수기업은 철저한 장인정신으로 유명하다. 400년 된 초밥집 이요마타는 가장 만들기 어렵다는 고등어초밥으로 승부한다. 비린내가 강한 고등어가 초밥으로 거듭날 때까지 수백 년간 연구가 축적됐다. 제주산 고등어 30㎝짜리 최상품만 사용하고, 쌀은 맛, 향기, 수분의 정도 등을 판단해 최종적으로 결정한다. 360년 된 양념가게 시치미야는 태풍이 와서 직영 농장의 작황이 좋지 않자 고객에게 나쁜 물건을 팔 수 없다며 4개월간 문을 닫았다. 370년 된 두부요리 가게 오쿠단은 하루 30인분만 만든다. 최고급 재료를 완전 수작업으로 딱 30명만의 손님을 위해 정성을 다해 준비한다. 1016년 된 떡가게 이치와는 24대째 최상의 숯불로만 인절미 구이를 생산하고 있다.
오랜 역사를 가진 교토 상점들이지만 구시대의 것만 고집하지는 않는다. 전통을 지키되 끊임없이 혁신한다. 379년 된 청주회사 겐케이칸은 ‘매일 새롭게 제조방법을 혁신하라’는 목표를 가지고 있다. 언제나 맛있는 청주를 생산하기 위해 좋은 누룩을 얻는 방법을 개발하고 있다. 1200년 된 부채가게 마이센도는 새로운 감각의 부채를 생산하는 곳이라고 스스로 평한다. 장인의 손으로 30번 이상의 공정을 거쳐 창작 부채를 제작한다. 아무리 잘 만들어도 고객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며 늘 첨단 디자인을 추구한다.
300년 된 요정 이치리키차야는 다른 요정과 달리 음식을 외부에 맡긴다. 한 달에 두 번씩 전체 메뉴를 바꾸려면 막대한 노력과 노하우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전문 식당에 맡기는 것이 음식도 훌륭하고 비용도 적게 든다. 음식 아웃소싱은 교토 기업들의 현대적 경영기법에서 배운 것이다.
300년 된 금박가게 호리킨 박분은 식기, 회화제품, 칠기 등 전통제품에 금박을 입히는 가게로 출발했다. 지금은 컴퓨터, 자전거, 골프공까지 금박을 입혀 판다. 화장수, 입욕제 등 금가루가 들어간 제품도 만든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제품을 끊임없이 개발한다. “오늘의 파괴는 내일의 전통이 된다”는 교토 상인들의 정신을 실천하고 있다.
최종석 기자 ellisic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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