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편향에다 인가절차도 불투명
개혁 않으면 허깨비 기관 전락할 것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snu.ac.kr >
옛말에 ‘끈 떨어진 망석중이’라는 말이 있다. 망석중이는 줄을 달아 위에서 조종하는 꼭두각시 인형을 일컫는다. 국제통화기금(IMF) 총재는 유럽, 세계은행 총재는 미국이 맡는다는 그들만의 불문율 아래 IMF가 강대국이 조종하는 줄에 매달린 망석중이란 사실은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그런데 최근 이 문제를 공식적으로 제기한 문건이 나왔다. 그것도 내부 문서로. IMF의 내부 감시조직인 독립평가사무소(IEO)는 지난달 28일 보고서를 통해 2010년 IMF가 그리스, 포르투갈, 아일랜드에 단행한 구제금융의 불투명성과 비형평성을 비판했다. 더불어 이런 문제의 배후로 유럽 채권국들의 부당한 정치적 압력을 강력히 시사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이들 국가에 대한 구제금융의 트로이카, 즉 유럽이사회(EC), 유럽중앙은행(ECB), IMF 등이 구제금융을 단행할 당시 구제금융 규모 및 방식과 선제조건 등 주요 의사결정이 이미 유럽 정상들의 집합체인 EC에 의해 결정된 상태에서 IMF는 단순히 이런 결정을 집행하는 데 그쳤다고 비판했다. 즉, EC는 독일과 프랑스 등 주요 채권국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대변해 구제금융 규모 및 그 조건을 결정했고, IMF는 이런 규모나 조건이 전례에 비춰 볼 때 부당하다는 실무진의 문제 제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압력에 ‘굴복’해 이를 수용했다고 주장했다.
절차의 불투명성 문제 역시 제기됐다. IMF 이사회는 이런 주요 정책 현안에 대한 정보에서 철저히 배제되고 집행진이 구성한 임시 태스크포스(TF)가 모든 현안을 독점하면서 선제적 채무구조조정에 대한 논의도 없이 구제금융안을 인가했다고 주장했다.
정치적 압력과 절차의 불투명성 외에 여기에는 중요한 시사점이 있다. 비형평성 문제다. 첫째, 만약 유럽이 아니라 다른 신흥국에서 위기가 터졌다면 이렇게 신속하고 과감한 구제금융이 이뤄졌겠느냐는 것이다. 실제 IMF는 그리스에 2010년 300억유로, 2012년 추가로 260억유로를 투입했다. 아일랜드와 포르투갈에도 비슷한 규모의 구제금융을 투입했는데 특정 국가에 대한 대출 한도를 세 배나 초과하는 금액이다. 둘째, 이례적으로 해당 국가의 부채 문제 해결을 선결조건으로 내걸지 않았다. 셋째, 이들 국가의 부채는 국가채무가 아니라 대부분 독일과 프랑스의 주요 은행들이 빌려준 금융권 부채다. 따라서 민간부채는 은행들에 채무상각과 같은 일정 수준의 채무조정을 요구했어야 하나 이를 하지 않았다. 이렇게 관대한 구제금융은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때와 비교된다.
이번 보고서를 작성한 IEO의 총책임자는 신지 다카기 일본 오사카대 교수다. 공교롭게도 그는 2003년 IMF가 외환위기 때 한국에 내린 처방에 대해서도 IEO 보고서를 작성한 인물이다. 당시 그는 IMF가 한국에 210억달러 차관 제공을 승인하면서 필요 시 200억달러를 추가로 제공할 수 있다는 ‘제2의 방어선’을 시사해 지원 규모가 불충분할 수 있다는 시장의 우려를 자극, 위기를 더 확대시켰다고 비판했다. 또 너무 과도한 긴축기조를 요구해 한국의 총수요 및 생산이 타격을 입었다고 주장했다.
이번 보고서가 나오자 전 IMF 연구원인 프라사드 미국 코넬대 교수가 “IMF 내외의 많은 사람들이 걱정하는 부분, 즉 선진국과 신흥국 처리방식에서 많은 차별이 있다는 점을 확인해 줬다”고 비판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심지어 행크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외환위기 당시 IMF가 수하르토 인도네시아 대통령을 축출하는 데 앞장섰다며 IMF는 기본적으로 정치적 단체라고 혹독한 비난을 퍼부었다.
물론 이런다고 IMF가 단기간에 변화할 가능성은 없다. 라가르드 현 총재 역시 아니나 다를까 “보고서가 증거도 없이 가정에 기초했기 때문에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절차를 새로 만들 필요성이 없다”고 일축했다. 일부 경제학자들이 ‘세계 경제는 IMF가 망치고 금융은 국제결제은행(BIS)이 말아먹는다’고 농담하곤 했는데 이런 식이면 IMF가 ‘끈 떨어진 망석중이’로 전락할 날이 머지않을 수도 있다.
안동현 < 자본시장연구원장 ahnd@snu.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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