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에 처음 SOC예산 빠진 추경
인프라 투자 늘리는 선진국과 반대
성장 뒷받침할 국가 인프라전략 필요
이상호 < 한국건설산업연구원장 >
금융위기 이후 세계 각국은 교통, 전력, 물, 통신망 등 인프라 투자를 대폭 확대했다. 경기부양과 일자리 창출을 위해서였다. 중국 같은 신흥국은 물론이고 유럽, 미국 등 선진국도 마찬가지였다.
우리는 그 반대다. 인프라 투자의 핵심인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4대강 사업으로 잠깐 늘었다가 2010년부터 해마다 줄었다. 올해 추가경정예산에는 11년 만에 처음으로 SOC 예산이 빠졌다. 내년 SOC 예산 요구액은 올해 예산액보다 15%나 줄었다. 중기재정계획에서는 2019년까지 연평균 6.8%씩 축소할 예정이다. 이미 우리 SOC가 선진국 수준에 도달했고, 국내총생산(GDP) 대비 투자비율이 너무 높으며, 투자 효율성이 낮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실은 급증하는 복지 예산 때문에 SOC 예산을 줄이고자 하는 유인도 있을 것이다.
세계경제포럼(WEF)은 작년에 우리나라 전체 인프라의 질적 수준을 20위로 평가했다. 선진국 클럽이라는 35개 OECD 회원국의 중간 수준인 셈이다. 우리의 벤치마킹 대상이 선진국 중 ?수준인가? 아니다. 세계 최고 수준이 돼야 한다. 그런데 세계 최고라는 스위스, 싱가포르 등은 지금도 계속 인프라 투자를 늘리고 있다.
선진국의 GDP 대비 인프라 투자비율은 8~10% 수준으로 우리보다 낮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유럽과 미국은 지난 30여년간 인프라 투자를 소홀히 한 것을 크게 반성하고 있다. 작년 3월에 확정된 유럽연합(EU)의 ‘융커 플랜’은 3150억유로(약 380조원)를 교통, 통신망 등에 투자하는 인프라 투자 계획이다. 미국은 몇 년 전부터 학계와 언론계만이 아니라 오바마 대통령을 비롯한 정치 지도자까지 나서서 인프라 투자 확대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다. 유력한 차기 대통령 후보인 힐러리 클린턴도 지난 11일 SOC 투자를 전담할 금융기관 설립 등 인프라 투자 확대를 대선 공약으로 발표했다.
글로벌 컨설팅기업인 PwC는 지난달 2020년까지 글로벌 인프라 투자 증가율이 연평균 5%에 달할 것으로 전망했다. 연평균 2~3% 내외 수준인 경제성장률보다 약 두 배나 높다. 그런데도 인프라 투자는 여전히 부족한 것으로 평가된다.
매킨지글로벌연구소(MGI)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이 2030년까지 추정 경제성장률 달성을 위해 필요한 인프라 투자액은 연간 약 3조3000억달러다. 현재까지의 지출 수준에 비춰볼 때 투자 부족액은 연간 약 3500억달러라고 한다. 그런데 조사 대상인 G20 국가 중 아르헨티나와 한국만 인프라 투자 부족액을 묻는 질문에 ‘무응답’이었다. 아직 우리나라는 SOC 예산 축소 방침만 있고, 국가경쟁력 강화와 경기 회복을 위한 인프라 투자계획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무턱대고 인프라 투자를 확대하자는 것은 아니다. 버블 붕괴 후 일본처럼 효율성을 도외시한 인프라 투자 확대는 예산 낭비만 초래한다. 앞서 언급한 MGI 보고서에서는 미국의 건설 생산성이 2010년대 들어 1991년의 70% 수준으로 하락했고, 그 원인이 정부 규제와 조달시스템의 비효율성에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인프라 투자정책과 제도에 관한 한, 미국도 우리가 본받지 말아야 할 반면교사인 셈이다. MGI 보고서는 어느 나라건 적정한 사업 선정 절차를 확립하고, 발주 및 입찰계약 제도를 효율화하며, 유지관리를 잘할 수만 있다면 인프라 비용의 약 40%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글로벌 인프라 전쟁의 와중에 우리만 역주행한다면 선진국과의 인프라 격차는 또다시 금방 확대될 것이다. 국내 인프라 투자는 계속 줄이면서 해외 인프라 수주를 확대하자는 정책도 비현실적이다. 해외 인프라 시장 진출도 국내 경험과 실적이 뒷받침돼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우리도 저성장 극복과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적정 SOC 예산의 편성과 집행, 투자 효율성 제고를 위한 정부 조달시스템과 건설산업 혁신 등을 포괄하는 국가 인프라 전략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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