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병훈 기자 ] “군인을 더는 받을 수 없을 만큼 배가 불러오자 미옥 언니는 변소에 갈 때마다 울었다. 아기가 벌써 죽었을 거라고 하면서도, 혹시나 오줌을 누다가 아기가 나와 변소에 빠질까 봐 겁이 나서였다. 위안소는 변소도 한도 없이 깊었다. 미옥 언니가 군인을 받지 못하자 하하는 부엌일을 시켰다. 다른 소녀들이 군인을 받을 때 미옥 언니는 부엌 바닥에 밀가루 포대를 깔고 그 위에서 아기를 낳았다.”
소설의 한 장면이지만 상상력만으로 쓴 게 아니다. 2013년 별세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의 증언을 바탕으로 재구성한 장면이다. 소설가 김숨 씨(42)는 신작 장편 《한 명》(현대문학)에서 이런 위안부 피해자들의 증언 316개를 모아 그들의 삶을 재구성했다. 일본군에게 짓밟힌 위안부 피해자의 고통이 절절하게 배어 있는 작품이다. 김씨는 소설에서 그들의 처절한 과거와 씁쓸한 현재를 오가며 얘기를 풀어낸다.
이야기는 ‘공식적으로 인정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가 단 한 명 남았다는 설정에서 시작한다. 작품에서 ‘그녀’로 불리는 주인공도 70여년 전 열세 살 때 납치돼 위안소로 끌려갔지만 자신이 피해자라는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터다. ‘그녀’는 마지막 남은 공식 피해자가 죽어간다는 얘기를 듣고 그를 찾아가 만난다. 이 만남을 계기로 ‘그녀’는 숨겨왔던 자신의 과거를 세상에 낱낱이 밝혀야겠다는 용단을 내린다.
김씨는 이 소설을 쓰기 위해 국내에 있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증언집 등 관련 자료를 거의 다 찾아봤다고 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 사실을 숨기고 살아온 할머니들의 아픔에 특히 주목했다. 김씨는 “여러 이유로 신고하지 않고 살다가 돌아가신 분이 더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며 “그 아픔을 끌어내면서 자아를 찾아주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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