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리우 인물] 패자의 품격·부상투혼…'진짜 태권도' 세계에 알렸다

입력 2016-08-19 18:49  

이대훈, 금메달보다 아름다운 동메달

8강서 뜻밖 패배 당하고 승자에게 뜨거운 박수
"인정하는 것이 예의다"

3~4위전 무릎 다치고도 세계 1위에 극적 역전승
진정한 올림픽정신 실천



[ 최진석 / 유정우 기자 ] 리우올림픽 태권도 남자 68㎏급 8강전이 열린 19일(한국시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파크 카리오카경기장3. 세계태권도연맹(WTF) 올림픽 랭킹 2위 이대훈(24·한국가스공사)이 40위 아흐마드 아부가우시(요르단)에게 8-11로 졌다. 올림픽 금메달은 물론 태권도 4대 메이저 대회에서 모두 우승하는 그랜드슬램의 꿈도 좌절됐다.

뜻밖의 패배였지만 그는 웃었다. 두 손 들어 박수를 쳤다. 그리고 자신을 누른 아부가우시의 손을 번쩍 들어줬다. 패배를 인정한 그는 축하 인사를 건네고 뒤돌아섰다. 퇴장하는 그의 표정에서 ‘실력 있는 상대를 만나 좋은 경기를 했다’는 만족감이 읽혔다.

아부가우시의 결승행이 결정되면서 이대훈에게 기회가 돌아왔다. 패자부활전에서 이기면 3-4위전으로 갈 수 있었다. 상대는 키 192㎝ 거구의 고프란 아흐메드(이집트). 이대훈은 위축되지 않았다. 그는 올림픽을 앞두고 “진짜 태권도가 뭔지 보여주겠다”고 말했다. 바로 이 경기였다. 현란한 발차기로 아흐메드를 제압해 14-6으로 이겼다. 경기 직후 아흐메드는 고개를 끄덕이며 이대훈을 향해 엄지를 들어 보였다.

3-4위전 상대는 세계랭킹 1위 자우아드 아찹(벨기에)이었다. 1, 2위가 맞붙어 결승전을 방불케 했다. 위협적인 발차기를 주고받는 난타전이 벌어졌다. 경기 초반 이대훈은 불리했다. 아찹의 몸통 방어가 철벽 수준이었다. 1라운드를 0-3으로 마친 이대훈은 2라운드에서 4-3으로 역전했지만, 또다시 실점하며 4-4를 기록했다. 3라운드에서도 기선을 잡지 못한 그는 4-5로 끌려갔다. 머리를 노려야 했다. 3라운드를 25초 남긴 상황에서 그의 발차기가 아찹의 머리에 꽂혔다. 7-5 역전이었다. 그때였다. 이대훈이 고통스러워하며 왼쪽 무릎을 감싸 쥐었다. 이대훈의 부상을 알아챈 아찹은 거세게 몰아붙였다. 이대훈은 파고드는 아찹의 머리를 다시 한 번 강타했다. 점수는 11-7로 벌어졌다. 아찹은 경기를 뒤집기 위해 고군분투했지만 승부는 기울어져 있었다. 경기 종료와 함께 이대훈의 동메달이 확정됐다.

이대훈은 다리를 절뚝거렸지만 응원해준 관중에게 잊지 않고 감사 인사를 했다. 관중들은 국적과 관계없이 멋진 태권도 경기와 올림픽 정신을 보여준 이대훈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금메달보다 아름다운 동메달이었다. 그랜드슬램 달성은 2020년 도쿄올림픽으로 미뤘지만, 그는 남자 태권도선수로는 처음으로 2회 연속 올림픽 메달리스트가 됐다.

그는 말했다. “패자가 인정하지 못하면 승자도 기쁨이 덜하고, 패자가 인정하면 승자도 더 편하게 다음 경기를 잘 뛸 수 있을 겁니다. 패배를 인정하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했습니다.”

이대훈이 “경기를 즐길 줄 아는 실력이 뛰어난 선수”라고 평가한 아부가우시는 조국 요르단에 첫 올림픽 메달을 선물했다.

이대훈은 이날 올림픽과 메달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담담하게 말했다. “올림픽에서 메달을 못 딴다고 해서 인생이 끝나는 건 아닙니다. 몇 개월 몇 년이 지나면 다시 잊힐 겁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라는 타이틀을 평생 갖고 살 게 아닙니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한 또 한 가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기죽지 않겠습니다.”

최진석/유정우 기자 iskr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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