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약산업 클러스터와 연계해 육성
[ 오경묵 기자 ] 세계적 타이어 회사인 던롭은 연비를 높이기 위해 평소에는 마찰력이 작지만 제동 시에는 마찰력이 큰 고부가가치 타이어를 방사광 가속기를 활용해 만들었다. 반대 특성을 함께 가진 타이어 구조를 찾아내는 데 가속기가 활용된 것이다. 로레알 등 세계적 화장품 기업들도 신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가속기로 원료의 구조를 연구한다. 타미플루, 비아그라는 가속기를 활용해 개발한 대표적 신약들이다.
한국 단일 건물(기계)로는 직선 길이가 가장 긴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가 올 하반기 경북 포항에서 준공된다. 기계 한 대 길이가 1100m, 기계 면적은 축구장 50배 크기다. 기계 설치에 들어간 예산은 4038억원. 4세대 방사광 가속기의 70%는 우리 기술로 만들어 국내 기업의 파급 효과도 만만치 않았다. 이 가속기는 3세대의 100억배 밝기로 100조분의 1초 단위까지 연구가 가능한 국내 최초, 미국 일본에 이은 세계 세 번째 범(汎)국가적 거대 과학시설이다.
포항의 제4세대 방사광 가속기 준공으로 경상북도가 역점적으로 추진 중인 7대 융합 신산업 육성도 가속화될 전망이다. 가속기를 활용하는 산업 분야가 다양해지자 경상북도가 가속기를 활용한 10대 신산업 육성에 나섰다.
경북에는 세 개의 가속기가 있다. 경주의 양성자 가속기와 포항가속기연구소에 있는 제3세대 방사광 가속기다. 세 개의 가속기를 설치하는 데 1조원 이상이 투입됐다. 포항가속기연구소에는 매년 400여명의 연구자가 방문하고 있다. 가속기를 활용해 500여개의 SCI논문이 발표되고 있다. 산업체 과제 100개를 포함해 1200개의 과제가 추진 중이다. 가속기 이용자들을 위해 125실의 이용자 숙소가 마련됐고 가속기 체험관도 운용되고 있다.
이기봉 포항가속기연구소장은 “미국이 우리 철강제품에 클레임을 건 적이 있는데 가속기를 활용해 그 원인을 찾아냈다”며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아 가속기 활용도가 전 산업으로 확대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그동안 가속기는 연구 중심으로 활용했지만 앞으로는 산업체 활용도를 높이는 데 역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해외에서는 기업들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가속기 전용 빔라인을 사용하면서 신제품 개발에 활용하고 있다.
가속기는 빛의 속도로 가속한 기본입자(전자나 양성자)를 목표 물질에 타격시켜 발생하는 빛을 활용해 물질의 구조를 분석하는 대형 연구장비다. 우주와 생명현상의 비밀을 푸는 열쇠로 불린다. 기초연구에서 생명과학, 나노산업, 의학, 방위산업 등 다양한 분야에 폭넓게 활용되며 최근 노벨물리학상의 20%는 가속기에서 나올 정도로 첨단산업의 핵심이다.
경북이 가장 주 舟求?분야는 신약 개발이다. 제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막단백질 구조 분석이 가능한 최첨단 연구시설이다. 전체 신약 개발의 60%는 단백질 구조 분석에서 나온다. 경상북도와 포항시는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추진 중이다. 가속기 클러스터 협의회를 구성해 신약분과도 출범시켰다. 신약산업을 견인하기 위해 올해 70억원을 확보해 오픈이노베이션 센터를 건립한다. 당뇨 연구 세계 최고 연구기관인 칼로린스카연구소와 제넥신 등 포스텍 동문기업, 국내외 주요 바이오 기업 23개와 국제 연구소를 유치해 신약산업 클러스터를 조성할 계획이다.
여기에는 포스텍과 함께 세포막단백질 구조 연구 노하우를 가진 미국 애리조나주립대의 국제공동연구소도 설립된다. 제약생명공학 시장 규모는 2024년 1080조원으로 한국의 3대 수출 산업인 반도체·화학·자동차산업을 합한 것보다 크다. 장승기 생명공학연구센터장은 “가속기 기반 신약 개발 프로젝트를 성공시켜 한국에서도 노벨상이 나올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가속기는 신약 개발 외에도 2차전지, 에너지, 탄소보합체 등 그린 신소재 개발 첨단 연구장비 글로벌기업 육성에도 활용되고 있다. 양성자 가속기는 양성자 암치료 등에도 활용하고 있다. LG화학과는 2차전지 성능을 향상시키는 연구과제를 진행해 고부가 신소재도 개발했다. 사파이어테크놀로지, 쎄크, IMT, 코스맥스 등 중소기업과도 집중 공동연구를 하는 등 기업의 활용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다.
경상북도는 스웨덴과 미국에 있는 국제연구소도 유치하고 있다. 이 사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경우 신약분야는 포항의 철강산업을 대체할 새로운 산업으로 성장할 전망이다. 김호섭 경상북도 창조경제과장은 “신약 시장은 성장성이 높은 산업으로 안동의 백신산업, 구미의 의료전자, 경산의 한방산업과 연결해 K메디 융복합 벨트를 조성하겠다”고 말했다.
포항=오경묵 기자 okmoo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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