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예진 기자 ] 나도 모르게 주먹이 불끈 쥐어진다. 우리의 아픈 역사 일제강점기를 담은 '밀정'. 송강호와 공유가 함께 그려내는 슬프고 통쾌한 반란이 시작된다.
'밀정'(감독 김지운·제작 영화사 그림)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실제로 있었던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토대로 당시 의열단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사실들을 엮어 극화한 영화다. 무장독립운동 단체인 의열단과 이들의 계획을 방해하려는 일본 경찰 간의 암투와 교란 작전을 그리고자 했다.
송강호는 조선인 출신 일본 경찰 '이정출'로, 공유는 의열단의 리더 '김우진'으로 분해 속내를 감추고 접근한다. 이정출을 의심하고 김우진을 잡으려는 일본 경찰 하시모토 역에는 엄태구가, 의열단의 핵심 멤버 연계순 역으로는 한지민이 열연해 아슬아슬한 긴장감을 선사했다.
25일 오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 CGV에서는 '밀정' 언론시사회가 개최됐다. 이 자리에는 연출을 맡은 김지운 감독을 비롯해 배우 송강호, 공유, 한지민, 엄태구, 신성록이 참석해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김지운 감독은 "콜드누아르 명칭을 붙이려고 했는데, 꽃다 ?나이의 독립 운동가들이 목숨을 던진 의열단 이야기가 중심이 된 영화이기에 뜨거워질 수밖에 없었다. '밀정'은 처음으로 내 스타일을 내려놓고 인물과 영화가 흘러가는 대로 좇아간 영화다. 아장아장 걸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으로 만들었다. 나에게 특별한 의미와 변화를 준 영화라고 생각한다"고 '밀정'에 대한 애착을 드러냈다.
이어 "그 시대를 감안하는 상징같은 것이라 생각. 한 나라가 비정상이고 불합리한 상태에 빠지면 개인의 존립 마저 위험하고 흔들린다. 밀정을 찾아가기보다 밀정이 될 수밖에 없는 시대를 담으려고 했다"고 영화의 주제를 설명했다.
김지운 감독과 송강호는 '조용한 가족'(1998), '반칙왕'(2000), '놈놈놈'(2008)에 이어 네 번째 호흡이다. 이러한 만남이 이뤄진 배경에는 송강호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
김지운 감독은 "송강호는 20년 동안 퇴보나 유보 없이 자신의 한계를 깨 나가서 놀라웠다. 내가 한계와 참담함을 느낄 때, '송강호의 한계는 어디까지일까'라는 생각을 했다. 송강호만의 인간적인 매력과 감성이 있어서 '밀정'이 가능했다. 정신적 이중국적자가 시대의 강력한 회오리에 떠밀려 무언가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역할을 송강호가 훌륭히 소화했다"고 극찬했다.
이에 송강호는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많은 작품들을 접해왔지만 '밀정'만이 가진 독창성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희생하신 많은 분들의 갈등, 고뇌를 담아냈다는 것"이라며 "아픈 시대를 관통해오고 열정적으로 살아온 분들의 인간적인 모습을 표현하려고 노력했다"고 밝혔다.
극 중 발가락이 잘려나가거나 가위로 찔러 사살하는 등 끔찍하고 충격적인 장면들이 다수 있지만 관객들의 뇌리에 박힌 것은 연계순의 고문 장면이었다. 그는 가녀린 여성이었지만 아주 강인했다. 피바다가 된 고문실에서 몸무림치는 연기를 해내는 건 배우 입장에서 정신적으로 쉽지 않았을 터.
연계순을 연기한 한지민은 "시나리오를 읽을 때부터 감독님이 이 장면을 얼만큼의 강도로 촬영하실까 생각하며 준비를 했다. 맞는 씬도 처음이어서 촬영할 때부터 힘들고 신체적으로 아프기도 했다"고 말문을 열었다.
이어 "쇠사슬에 팔다리가 묶여 있었기 때문에 환경이 주는 분위기가 컸다. 현장에서 인두의 효과를 위해 불이 있는 것처럼 연출했다. 가짜임에도 불구하고 인두를 내 얼굴에 가져오는데 공포감이 굉장히 크더라. 눈물이 나면 안 되는데 눈물이 차올랐다. 내가 연계순이라면 말을 하지 않고 버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컷 하자마자 한동안 울다가 다시 찍었다"며 촬영 당시를 회상했다.
한지민의 얼굴에 인두 고문 연기를 해야했던 송강호는 "아름다운 얼굴에 고문을 하려고 하니 괴로웠다"며 "연계순이라는 인물은 많은 장면에 나오지 않지만 '밀정'에서 굉장히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 작은 손도 지켜주지 못했다는 것이 이 영화를 대표하는 정신인 것 같다"고 소감과 함께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공유는 상대의 숨겨진 의도를 간파하는 냉철함을 가진 캐릭터로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공감을 자아냈다. 의열단의 리더인 만큼 중국어, 일본어까지 능숙하게 구사하며 '김우진'으로 완벽히 변신했다.
그는 "시대극은 처음이라 어려움이 많았고 어떤 영화보다도 고민을 많이 했다. 송강호 선배님 앞에서 주눅도 들고 자학도 하고 박탈감도 느껴봤다. 여러가지를 느꼈다. 오늘 영화를 처음 봤는데 정말 좋은 과정이었다고 다시 한 번 생각했다. 감독님께 감사드린다"며 "배우라는 직업 덕분에 작품으로나마 1920년 혼돈의 시대를 경험해 본 것이 뜻깊고 흥미로운 시간이었다"고 뭉클한 소감을 전했다.
한예진 한경닷컴 기자 geni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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