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규재 칼럼] 구속된 벤처인 김인식의 경우

입력 2016-08-29 17:48   수정 2016-08-30 14:44

벤처인 누구나 1%에 목숨을 건다
미완성을 사기라면 누가 벤처하나
검찰 수사가 미칠 파장을 걱정한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지난 주말 바이올시스템즈라는 작은 회사의 대표가 사기죄로 구속됐다. 남상태 전 사장 재직 시절 대우조선해양으로부터 44억원의 투자를 받았는데 이것이 사기였다는 것이다. 검찰에 따르면 회사 대표 김인식은 바이오에탄올을 상용화할 수 있는 구체적인 계획과 능력이 없는데도 상용화 능력이 있는 것처럼 남상태 전 사장과 대우조선을 속여 투자를 받았다. (이 사건을 논하기에 앞서 김인식 대표가 오래전 퇴직한 한경 기자 출신이라는 사실을 미리 밝혀 두는 것이 좋겠다)

2009년 설립된 이 회사는 다른 많은 창업 기업들이 그런 것처럼 숱한 우여곡절을 겪어 온 것 같다. 우뭇가사리로부터 바이오 연료를 뽑아내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업이 되겠다는 꿈은 그러나 지금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회사 대표가 사기꾼이 됐으니 타격이 클 것이다. 해조류에서 바이오에탄올을 뽑아내는 원천 기술은 보유하고 있지만 실험실에서의 기술이었을 뿐 상업용 양산기술은 없었다는 점, 필리핀에 10만㏊의 우뭇가사리 양식장을 확보했다고 밝혔지만 확보?면적은 55㏊에 불과했다는 점, 매일 20t의 해조가 필요하지만 실제 이 회사가 실험에 사용한 해조는 모두 합쳐 44t에 그친 점 등이 사기였다는 것이다. 검찰 발표를 들으면서 이 회사가 “꽤 앞으로 나아갔었구나”라는 정반대 생각을 갖게 됐다. 1% 가능성에 목숨을 거는 것이 기술벤처라는 것을 생각하면 회사를 설립한 지 불과 3년여 만에 놀라운 가시적 성과를 거둔 것이다.

대우조선해양이 이 벤처기업에 투자한 것이 옳았는지는 판단을 유보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투자가 사기의 결과였는지는 논란거리다. 이 기술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서 차세대 기술로 지정할 정도로 정부 역시 강한 의욕을 보여 왔다. 국책연구소의 젊은 연구원들도 안정된 직장을 버리고 나와 인생을 걸었다. 벤처기업의 사기란 무엇인지, 그리고 의도가 없는 사기가 가능한 것인지 궁금하다. 검찰이 김인식을 엮은 것은 강만수 전 산업은행장을 치기 위한 일종의 걸쇠로 보지만 강 전 행장을 사기 공범, 아니라면 다른 무슨 죄목으로 처벌할지도 궁금하다.

문제는 남상태의 증언을 검증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순이다. 만일 남상태가 강만수의 강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투자했다고 주장한다면 김인식의 사기죄는 무죄가 된다. 그런데 검찰은 지금 대우조선의 투자는 김인식의 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만일 사기로 결론이 난다면 이번에는 강만수의 강압 혐의가 무죄가 된다. 검찰 설명으로는 대우조선 실무선에서는 투자에 반대했다는 것인데, 그 경우라면 역시 사기혐의는 무죄다. 실무자들의 반대에도 회사가 사기를 당했다는 것은 아주 웃기는 주장이 되고 만다.

결국 사기가 무죄가 되거나 강압이 무죄가 되는 일종의 양자택일 딜레마 게임이 되고 만다. 무분별한 사기죄 적용도 문제다. 만일 기술의 완성도가 낮고 장차의 계획이나 의도만으로 투자받는 행위를 사기로 본다면 이는 대한민국의 모든 벤처를 사기죄로 예비검속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사업 내용이 이미 충분히 투자할 만한 단계로까지 완성돼 있다면 이번에는 그 기업이 이미 벤처가 아니라는 결론을 내려야 마땅하다. 이 역시 모순이다. 검찰이 적시한 사기 항목들은 누구라도 간단한 실사만으로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들이다. 실험 실적이나 우뭇가사리 재배 면적 따위는 초보 수사관이라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지금 김 대표나 강 전 행장을 옹호하기 위해 장황한 논리를 펴는 것은 아니다. 검찰의 설명대로라면 앞으로는 성공한 기업이 아니면 그 어떤 벤처도 쉽게 투자를 받을 수 없다. 사업 전망은 불투명하고 내일에 대해서는 절망만이 드리워져 있는 것이 벤처의 현실이며 본질이다. 과감한 계획과 사기는 종이 한 장 차이다. 누구라도 그 1%의 가능성에 미래를 걸고 오늘을 살아간다. 바로 그 99%의 실패 가능성을 지금 검찰은 원천 부정하고 있다. 짜맞추는 수사라는 것은 이런 상황을 두고 하는 말이다.

정규재 주필 jk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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