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조선사에 각각 4조원이 넘는 돈을 투입하고서도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비판을 받았던 산은은 한진해운에 대한 추가 지원이 혈세 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결단을 내렸다.
그러나 한진해운이 법정관리 수순을 밟으면서 이미 투입된 1조원 이상의 혈세는 손실이 불가피해졌다.
31일 채권단과 금융권에 따르면 한진해운의 법정관리로 국책은행인 산업은행은 최대 6600억원, 공공기관인 신용보증기금은 4300억원가량의 손실을 입을 가능성이 커졌다.
국책은행과 공공기관의 손실은 결국 국민 세금으로 충당해야 한다는 점에서 혈세 손실이라고 볼 수 있다.
산은은 한진해운에 지원한 돈을 떼일 상황을 가정하고 이미 충당금을 쌓아둔 상태다. 산은은 한진해운에 일반대출 3천400억원과 대출보증 300억원을 해줬다.
한진해운이 발행한 사모 회사채 2400억원과 공모 회사채 500억원도 보유하고 있다.
한진해운 전체 회사채 발행 잔액(6월 말 기준 1조2000억원)의 25% 규모다.
한진해운이 법정관리를 신청하는 순간 모든 채권·채무는 동결되기 때문에 법원이 파산 결정을 내리면 산은은 원금 대부분을 까먹을 수 있다.
신용보증기금은 한진해운 회사채 투자자들에게 꼼짝없이 최대 4306억원을 대신 갚아주게 됐다.
회사채 신속인수제에 참여하면서 한진해운 회사채를 기초자산으로 발행한 프라이머리 유동화증권(P-CBO)에 지급보증을 선 결과다.
P-CBO를 보유한 투자자가 만기에 원금을 돌려받지 못하면 신보가 갚아야 한다.
신보는 국민 세금으로 운영되는 공공기관이기 때문에 이 또한 결국 혈세라고 볼 수 있다.
회사채 신속인수제는 2013년 7월 유동성 위기를 겪는 기업의 회사채 차환 발행을 지원하기 위해 정부가 내놓은 제도다.
기업이 만기가 돌아온 기존 회사채를 갚기 위해 신규 회사채를 발행하면 산업은행이 이를 인수해 자금 순환을 돕는 방식이다.
산은 인수 회사채의 60%를 신보가 보증하고 나머지는 보증 없이 채권은행과 금융투자업계(회사채안정화펀드)가 각각 30%, 10%씩 나눠 인수했다.
신보 지원 당시 중소기업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된 신보가 대기업들의 빚 부담을 나눠 지다가 손실을 볼 수 있다는 우려가 있었는데, 현실화된 셈이다.
이동걸 산은 회장은 한진해운에 대한 신규 지원을 하지 않기로 한 지난 30일 기자회견에서 국민 혈세를 투입하는 데 신중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 회장은 "현대상선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끝까지 단 한 푼의 혈세도 들어가지 않았다"며 "한진해운에도 그런 원칙을 지키기 위해 노력했다"고 말했다.
한경닷컴 산업경제팀
기사제보 및 보도자료 open@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