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호 칼럼] '기업 살리는 수사' 정말 불가능한가

입력 2016-08-31 18:38  

장기화하는 롯데 수사, 포스코 전철 밟나
검찰 '먼지털기식' 수사로 경영 활동 마비시켜서야
빠른 시일 내 환부만 정확히 도려내야 사람도 기업도 살릴 수 있어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이인원 롯데 부회장의 빈소는 말 그대로 침통한 분위기였다. 조문 온 사람이나 그들을 맞는 외아들 내외와 회사 관계자들, 서로 황망해할 뿐이었다. 물끄러미 바라본 영정 사진에서 백화점 대표 시절 매장의 휴지를 줍다가 눈이 마주치자 멋쩍게 웃던 고인의 모습을 발견하곤 어찌나 착잡하던지….

벌써 두 달 하고도 보름이다. 검찰의 압박은 전문경영인의 정점에 서 있는 그를 향해 서서히 조여들었을 것이다. 꼼꼼한 성격인 그가 어떤 심리상태였는지는 생각하기 싫다. 오죽하면 사고와 합병증으로 생사를 넘나드는 부인을 두고 극단적인 선택을 했을까 하는 생각에 이르면 뭔가 잘못돼도 크게 잘못됐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초여름, 검찰은 롯데에 대한 수사에 나서면서 ‘신속하고 정확한 수사’를 자신했다. 일시에 500여명이라는 대규모 인력을 투입해 30여곳을 압수수색했고 1t 트럭 수십대 분량의 서류 등을 압수했다. 오너 일가와 경영자 30여명에게는 출국금지 조치가 내려졌다.

그리고 조석으로 서늘한 바람이 부는 9월이다. 신속 정확할 것이라던 수사는 장기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롯데는 롯데대로, 검찰은 검찰대로 망가지고 있을 뿐이다.

포스코의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347일에 걸친 초장기 수사였다. 해외법인, 계열사와 협력업체까지 전방위 압수수색이 이어졌고, 100여명이 소환됐다. 그러나 수사 결과는 어땠는가. 일부 계열사 임원들이 구속됐을 뿐, 핵심 피의자는 모두 불구속 기소됐다.

포스코에는 암흑기였다. 그룹 차원의 고강도 경영쇄신은 물론 본업인 제철의 경쟁력 회복 노력도 지연됐다. 철강산업 대변혁기에 밀어닥친 검찰의 저인망식 수사는 포스코 경쟁력에 심각한 타격을 가했다.

롯데라고 다르지 않다. 자금줄이 막힌 지 오래다. 기초 체력이 바닥부터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전략도 마찬가지다. 미국 화학기업 인수가 무산되는 등 구조조정 작업이 전면 중단됐다. 호텔롯데의 기업공개 무기 연기는 더 큰 타격이다. 지주사 격인 이 회사를 상장해 투명성을 높인다는 게 그룹 지배구조 개선 방안의 핵심이다. 하지만 내년 실행도 어려워졌다.

검찰도 난감할 것이다. 성과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신동빈 회장 개인 비리 등 핵심 혐의 입증은 여전히 지지부진하다. 신청한 구속영장도 대부분 기각됐다.

그러던 중 이 부회장의 자살이다. 수사는 더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수사가 장기화하면 정치적 의도에서 비롯된 수사라는 비판이 나오기 마련이다. 벌써 그런 분위기다.

‘기업 살리는 수사’를 말한 것은 김진태 전 검찰총장이다. 내사를 정밀하게 해 가장 이른 시일 내에 환부만 도려내야 대상자인 사람과 기업을 살리는 수사가 가능하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김수남 현 총장이라고 다르지 않다. 부정부패 수사는 영명한 고양이가 먹이를 취하듯이 적시에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한 총수다.

그러나 현실은 따로 논다. 심장이 나쁘다고 개복을 해놓고 맹장이라도 떼어내야 속이 시원한 검찰이다. 나올 때까지 뒤진다는 별건 수사, 저인망식 수사의 폐해다.

검찰 입장도 있다. 수사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것만으로도 조직과 수뇌부가 타격을 받는다. 여론의 비난도 감당하기 어렵다. 그러나 그건 검찰의 입장이다. 기업은 약하디 약한 존재다. 조 단위 매출의 기업도 수사망에 걸려들면 살아남기 힘들다. 검찰이 살자고 기업을 죽일 수는 없는 일 아닌가.

하기야 범죄가 없는데 수사가 있겠는가. 그러나 ‘규제 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게 결코 쉽지 않다. 후진적 정치 구조도 기업을 어렵게 한다. 괜히 한국에서 기업을 한다는 것은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일이나 다름없다고 하겠는가.

물론 기업과 기업인이 위법행위를 했으면 마땅히 조사를 받고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한다. 그러나 기업 활동을 아예 마비시키는 이런 ‘먼지털기식 수사’는 곤란하다. 검찰 스스로도 부담이 되고 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뿐이다.

바뀌었어도 벌써 바뀌었어야 할 수사 관행이다. 기업을 살리는 수사가 영 불가능한 것만은 아니지 않은가.

김정호 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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