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기계과 출신 '발명가'
충무김밥 제조기·절단기 등 30년간 만든 기계 100여종
일본 제품보다 70% 저렴한데 컨베이어벨트 소음도 적어
사물인터넷 접목 제품도 개발
[ 김낙훈 기자 ]
“칙칙폭폭. 이번에 도착할 요리는 참치초밥입니다.”
경적을 울리며 장난감 기관차가 달린다. 그 뒤 트레일러에는 접시에 담긴 참치초밥 김초밥 새우초밥 등이 실려 있다. 서울 신도림동 오리온식품기계가 개발 중인 제품이다. 이 회사에는 재미있는 제품이 가득하다.
엄천섭 사장은 기업인이자 발명가다. 엄 사장은 “지난 30년 동안 개발한 기계가 100종이 넘는다”고 말했다. 충무김밥성형기, 초밥성형기, 밥혼합기, 김밥제조기, 사각밥 수동성형기, 김밥절단기 등이 대표적이다. 엄 사장은 “그중 효자 상품은 20%쯤 된다”며 “간판 제품은 컨베이어를 활용한 회전초밥 시스템”이라고 설명했다. 손님들이 앉은 자리에서 원하는 것을 선택할 수 있도록 컨베이어 시스템에 초밥접시를 놓아 회전시키는 장치다.
엄 사장은 “신세계 현대 롯데 등 국내 백화점 음식코너의 회전초밥 시스템은 우리가 80%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제품을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독일 영국 등 10여개국에 수출하기도 했다.
엄 사장은 “일본 제품에 비해 가격이 30% 수준에 불과한 데다 컨베이어가 코너를 돌 때 훨씬 부드럽고 소음도 적어 해외에서 많이 찾는다”고 설명했다. 김밥을 한꺼번에 10줄 이상 자를 수 있는 김밥절단기가 그 뒤를 잇는 효자 상품이다.
충북 단양 출신인 엄 사장은 지방의 공업고등학교 기계과를 나왔다. 뭔가 만들기를 좋아하는 그의 꿈은 ‘공장 운영’이었다. 처음엔 대기업에 취직했지만 정해진 일 외에는 배울 수 없었다. 다양한 업무를 배우겠다며 사직하고 서울 양평동의 중소기업으로 옮겼다. 그 뒤 선반 밀링 용접 등의 일을 하면서 현장 경험을 쌓았다. 사우디아라비아 건설근로자로 나가 창업 자본을 모은 뒤 1986년 서울 목동에서 창업했다. 지인의 공장 한쪽에서 선반 한 대로 쇠 깎는 일을 시작했다.
외환위기가 그의 인생을 바꿔놨다. ‘받을 어음’이 부도나면서 어려움을 겪었고 ‘나만의 제품’을 개발해 현금 거래만 하기로 했다. 서울 신길동 김밥 공장에서 밤새 수천 줄의 김밥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고 김밥절단기를 개발했다. 그 뒤 고객이 원하는 것을 만들어주기 시작했다.
그는 호기심이 많았고 기계를 만드는 재 ?있었다. 다양한 기계를 다뤄봤고 틈틈이 해외 전시회에 참가해 아이디어 제품을 눈여겨봤다. 한 번 납품한 기계에 대해선 애프터서비스는 물론 사전점검도 해줬다. 고장 나기 전 미리 부품을 교환해줬고 이런 노력으로 신뢰를 쌓자 단골이 늘었다. 다양한 ‘현장 경험’과 ‘호기심’, 고객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경청’이 신제품 개발의 원동력이 된 셈이다.
그는 요즘 두 가지 제품의 완성을 눈앞에 두고 있다. 하나는 고객이 자리에서 터치패널로 음식을 주문하면 컨베이어 시스템을 통해 배달하는 장치다. 또 하나는 장난감 소형 기관차가 음식을 싣고 기적을 울리며 요리를 배달하는 장치다. 기관차는 레일을 통해 전류를 받아 움직이며 안내방송과 기적소리까지 낼 수 있다.
엄 사장은 “인생은 즐거워야 하고 사업도 마찬가지”라며 “즐거움을 줄 수 있는 제품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는 사물인터넷을 결합한 제품이 대세를 이루는 만큼 이를 접목한 음식 관련 기계 개발에도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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