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이라마 "어릴 때부터 사랑·자비·연민 가르치면 평화로운 세상 열려"

입력 2016-09-01 18:04   수정 2016-09-02 06:45

인도서 만난 티베트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에게 평화를 묻다

21세기 불자의 자세는
어떤 종교든 맹신은 독
불법도 공부해서 이치에 맞으면 믿으라

한국 방문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반드시 이루어질 것
느긋하게 기다려 달라

행복해지는 길
지구 전체가 싸움터로 보여
갈등·다툼·고통의 해법은 서로 아끼고 베푸는 것



[ 서화동 기자 ] “불교 역사가 오래된 한국에 제가 가지 못하고 있는 것은 중국 정부와 연관이 있는데, 중국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핵 문제와 관련해) 중국이 북한도 압박하고 있지 않습니까. 내년에 중요한 회의(제19차 중국 공산당전국대표대회)가 열리고 나면 좋은 쪽으로 변화가 있을 겁니다.”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라마 14세(81)가 자신의 방한에 대해 낙관적 기대를 내놨다. 지난달 30일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인도 서북부 다람살라의 달라이라마궁 접견실을 찾은 달라이라마방한추진회 대표단과 한국 기자단을 만난 자리에서다. 국내 불교 신자 등을 향해서는 “방한은 시간문제일 뿐 반드시 이뤄질 것”이라며 “느긋하?기다리라”고 다독였다. 방한추진회 공동대표인 진옥(여수 석천사 주지) 금강(해남 미황사 주지) 스님은 달라이라마에게 방한 초청장과 해인사 팔만대장경판 중 반야심경 복제판을 선물로 전달했다.

달라이라마는 시종 여유롭고 명쾌했다. 간간이 유머를 섞어 가며 종교와 종교인의 역할, 각자의 내면과 세계 평화를 위한 사랑과 연민의 중요성 등을 조목조목 설명했다.

달라이라마는 “2001년 법왕(法王)이라는 정치적 지위를 내려놓고 투표로 총리를 뽑았다”며 “2011년엔 아예 정치에서 완전히 손을 뗐다”고 설명했다. “달라이라마는 종교 지도자가 아니라 망명정부를 이끄는 정치 지도자”라며 방한에 반대해온 중국이 더 이상 주장할 근거가 사라졌다는 얘기다.

방한한다면 한국 사람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고 싶은지 묻자 나온 답은 “공부하라”였다. “대부분 불자는 전통과 관습에 따라 독송과 예불을 하지만 배움과 수행은 중시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신심만으로는 불교가 얼마나 지속될지 알 수 없습니다. 부처님은 당신의 말이라도 잘라보고 태워보고 긁어보고 살펴봐서 이치에 맞으면 믿으라고 했습니다. 경전에 담긴 뜻을 분석하고 추론하고 관찰해 지혜로써 따르고 배워야 불교가 수천년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달라이라마는 그 바탕이 반야심경에 담겨 있다고 했다. 공성(空性:일체 존재의 실체가 없음)과 보리심(菩提心:깨달음을 얻어 널리 중생을 교화하려는 마음)에 대해 스스로 사유하고 배워야 한다는 것. 그는 “사유가 깊어지면 실제로 수행하게 되고, 그 결과를 경험과 체험으로 확신할 때 삶이 바뀐다. 이전보다 삶이 더 행복하고 즐거워진다”고 강조했다. 과학과 종교의 관계에 대해서는 상호보완적 역할을 주문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과학을 좋아해서 과학자들과 교류해왔습니다. 그 결과 이제는 (불교에서 세상의 중심이라고 믿어온) 수미산의 존재를 믿지 않아요, 하하. 과학적 증거가 있는데도 지구가 바닥이 평평한 사각형이며 수미산이 그 중심이라고 계속 주장하면 어리석은 일이죠. 그러나 증거는 없지만 가능성이 있는 것까지 무시하면 안 돼요. 아직 보지 못했을 뿐 없는 것은 아니니까요.”

인공지능 알파고가 인간과의 바둑 대결에서 이긴 것은 크나큰 충격이었다. 하지만 달라이라마는 “내가 아는 한 사람의 지성은 인공지능보다 낫다. 인공지능과 티베트의 뛰어난 스님이 대결하면 우리가 이길 것”이라며 껄껄 웃었다.

달라이라마는 “중요한 것은 21세기의 불자라면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사실”이라며 자비와 연민의 실천을 강조했다. 물질적 생활여건이 좋아졌고 교육이 많이 향상됐는데도 사람들은 서로를 너무 쉽게 죽이고 속인다는 게 달라이라마의 진단이다. 지구 전체가 싸움터로 보일 정도다. 이런 갈등과 다툼, 고통을 행복으로 바꾸는 묘약이 사랑과 자비, 연민이다.

달라이라마는 1989년 노벨평화상을 받은 평화론자다. 북한 핵 위협과 한반도 사드 배치를 둘러싼 갈등과 대립, 중국 일본 동남아 국가의 영유권 분쟁 등 ‘아시아의 위기’를 해소할 방법도 결국 사랑과 자비, 연민이라고 설명했다.

“현실에서 평화를 구현하기란 어렵다는 것, 맞는 말입니다. 저는 10년, 20년, 30년 안에 뭔가 변할 거라고는 믿지 않습니다. 간곡히 부탁하건대 유치원 때부터 사랑과 자비, 연민을 과학적·논리적으로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아이들이 정치인, 교육자 등 다양한 분야로 진출해 새 세상을 열 것입니다. 사랑과 연민의 씨앗을 심고 가르치면 좀 더 평화로운 세상이 됩니다. 그 외에 무슨 방법이 있겠습니까.”

달라이라마는 종교 간 다툼을 경계했다. “종교 간 싸움은 수치스러운 일”이라고 단언했다. “부디스트든 무슬림이든 테러리스트는 틀렸습니다. 살생하는 사람이 수행자일 수 없습니다. 테러는 이슬람의 가르침이 아닙니다. 모든 종교는 좀 더 친절함과 선함으로 본보기가 돼야 해요. 선악의 기준은 명확합니다. 남에게 도움이 되면 선이고, 불행과 괴로움을 가져다주면 악입니다. 불자라면 다른 종교를 존중하면서 남을 이롭게 해야 합니다.”

취업, 육아 등 현실 문제 때문에 행복하지 못한 젊은이를 위한 조언도 내놨다. 달라이라마는 “감각의 행복은 물질에 달렸고, 마음의 행복은 의지에 달렸다”며 “운동 선수들이 목표를 향한 강한 의지로 육체적 고통을 극복하듯이 젊은이들도 의지가 굳건하면 힘든 상황을 극복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다람살라=서화동 기자 fire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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