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바퀴에 깔릴 것인가
힘껏 밀고나갈 것인가
한국의 현실과 닮은 독일 19세기
집안과 학교, 나아가 마을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다면 자랑스러우면서도 부담이 될 것이다. <수레바퀴 아래서>의 주인공 한스 기벤라트는 똑똑하고 재능이 있는 데다 외모까지 출중하다. 현대적인 교육을 받은 사람이 하나도 없는 작은 마을 슈바르츠발트를 벗어나 넓은 세상에서 성공하고 싶은 한스. 길은 오직 하나, 주 시험에 합격해서 튀빙겐의 신학교 수도원에 들어가 목사가 되거나 교수가 되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스는 매일 오후 4시까지 학교 수업을 받고 뒤이어 교장선생님에게 그리스어를 배웠다. 오후 6시부터는 마을 목사가 라틴어와 종교학 복습을 도와주었다. 1주일에 두 번, 저녁 식사 후 수학선생님에게 학습지도를 받았다.
19세기 독일 풍경이 어쩐지 21세기 우리나라 입시현장과 많이 닮았다. 부모의 기대를 잔뜩 받으며 학교와 학원을 오가는 학생들은 일류대에 합격하고 졸업 후 대기업 사원이나 공무원이 되길 원한다.
토끼 기르기와 낚시하기, 산책하기를 다 밀쳐두고 오로지 공부에 전념해야 하는 상황이 싫지만 한스는 선생님들의 자랑거리가 된 일에 우쭐한다. 이름을 떨치고 싶은 욕심으로 공부에 매달리다가 절망에 빠지기도 한다. 동네 철공소나 치즈가게에 취직하게 될 친구들을 나중에 내려다보게 될 거라는 생각으로 행복감에 젖기도 한다.
기대를 저버리지 않은 한스는 주 2등으로 신학교에 합격해 마을의 자랑거리가 된다. 똑똑한 아이들만 모이는 신학교에서 우등생이 되기 위해 한스는 쉬지 않고 수학, 히브리어, 호머 등을 공부한다. 합격의 기쁨을 만끽하기보다 선행학습에 지쳐가는 한스를 보면 방학 때도 쉬지 않고 학원에 다니는 대한민국 청소년들이 떠오른다.
아버지는 마울브론 수도원에 들어가는 한스에게 “우리 집안의 명예를 높여다오”라는 부담을 안긴다. 이쯤에서 짐작하겠지만 한스의 수도원 생활은 실패로 끝난다. 이미 입시 준비를 할 때부터 두통에 시달리며 성공에 대한 초조감으로 가슴 졸였던 한스는 입학 초기에 반짝 공부를 잘했으나 점차 성적이 나빠진다.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우울한 천재 하일러와 어울리다가 하일러가 퇴학당하자 한스는 왕따 신세가 된다. 눈앞에 펼쳐지는 이상한 장면과 두통에 시달리느라 성적이 바닥으로 떨어진 한스는 신경쇠약 증세로 더 이상 학업을 계속할 수 없게 된다. 모든 의욕이 사라진 채 고향으로 돌아온 한스에게 사람들은 더 이상 관심이 없다.
한스는 헤세 자신이다
<수레바퀴 아래서>는 19세기 말의 독일 교육체계를 배경으로 쓴 소설로 한스 기벤라트의 모델은 헤르만 헤세 자신이다. 1877년 7월 독일에서 태어난 헤세는 14세에 명문 개신교 신학교 수도원인 마울브론 신학교에 입학한다. 하지만 시인이 되겠다며 1년 만에 신학교를 도망쳤고 자살기도를 했다가 정신요양원 생활을 한다.
<수레바퀴 속으로>의 한스는 신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라틴어를 열심히 공부하는데 헤세도 라틴어를 공부한 뒤 국가시험에 합격했다. 19세기 말 과중한 학업에 짓눌렸던 독일 청소년들의 자살은 심각한 사회문제였다. 특히 군사학교나 기숙학교 학생들의 자살이 많았다. 엄청난 경쟁을 뚫고 입학한 학교에서 사춘기 학생들이 엄격한 규제를 견디지 못해 절망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한스는 어떻게 되었을까. 실망감을 내뿜는 아버지와 마을 사람들의 눈을 피해 자살을 계획했던 한스는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겨우 견딘다. 엠마라는 여자에게 사랑을 느끼며 마음에 안정을 찾아가던 한스는 말없이 떠난 그녀가 자신을 진심으로 대하지 않았다는 걸 깨닫고 절망에 빠진다. 하지만 아버지의 권유로 기계공이 된 한스는 새 삶에 적응하려고 노력한다. 공장 직원들과 술을 마시고 노래도 부르지만 저 멀리서 불행의 그림자가 다가오는 것 같은 느낌에 빠진다. 술취한 채 들어가 아버지에게 야단맞으면 어쩌나 걱정하던 한스는 영원히 쉬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물에 빠졌는지 모르나 다음날 한스는 강에 빠진 채 발견된다.
고난을 이기고 위대한 작가가 되다
헤르만 헤세는 어떻게 자살 유혹을 벗어던졌을까. 정신과 치료를 받은 헤세는 <수레바퀴 아래서>를 쓰면서 치유를 받고 위대한 작가로 거듭났다. 한스 기벤라트라는 자신의 분신이 겪은 방황과 우울을 찬찬히 기록하면서 그 아픔에서 벗어난 것이다.
29세에 <수레바퀴 아래서>를 낸 헤르만 헤세는 그 후 많은 작품을 발표하고 42세 때 그 유명한 <데미안>를 출간한다. 66세에 <유리알 유희>를 발표하여 3년 후 노벨문학상을 수상했으며, 1962년 85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학업에 눌리고 정신병에 시달리며 힘든 청소년기를 보낸 헤르만 헤세, 결코 꺾이지 않았기에 인류에게 수많은 작품을 선물했다. 신학교 교장선생님이 한스에게 들려준 “기운이 빠져서는 안돼. 그렇게 되면 수레바퀴 아래에 깔리고 말 거야”라는 말이 헤세의 각오를 새롭게 했을 것이다. 청소년기를 지나 청년기가 되면 또 다른 고난이 기다리고 있다. 인생의 고비 고비에서 아픔에 함몰되기보다 수레바퀴를 힘껏 밀고 달려나가야 한다. 그래야만 신이 감춰둔 위대한 선물을 발견할 수 있다.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