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지서 36명 설계 배우러 와…원전 자립한 한국모델 주목
[ 박근태 기자 ] 지난 7월부터 대전 유성 한국원자력연구원 원자력교육센터에는 36명의 사우디아라비아 청년이 매일 출근하고 있다. 대부분 20대 중후반인 이들은 한국의 원전 기술을 배우러 온 사우디 왕립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 직원이다. 사우디 정부가 한국형 중소형 원자로(SMART·스마트)를 함께 개발하기 위해 뽑은 인재들이다. 이들은 이달 말까지 원자로에 대한 기초를 배운 뒤 2018년 11월까지 원전 설계와 운영 교육을 받는다.
◆사우디 국가사업 ‘스마트 원전’
지난해 사우디에 수출한 스마트 원전은 한국형 표준원전(OPR1000)과 아랍에미리트(UAE)에 수출한 신형 경수로(APR1400)보다 규모가 작은 중소형 원전이다. 발전 용량이 기존 대형 원전의 10분의 1 규모다. 일반 원전 건설비(3조~4조원)보다 적은 1조원 정도면 지을 수 있고, 바닷물을 민물로 바꾸는 담수화 기능도 갖춰 대형 원전을 지을 자금이 부족하거나 전력 수요가 많지 않은 국가를 공략할 수 있는 수출 상품이다.
하지만 한 번도 건설된 사례가 없어 개발해 놓고도 수출길을 찾지 못했다. 이때 관심을 보인 나라가 사우디다. 사우디 정부는 스마트 원전 2기의 건설 부지와 인력 양성을 주요 조건으로 내세웠다. 사우디 정부는 석유 고갈에 대비해 원자력을 전략적 과제로 삼았다.
지성균 원자력연 스마트 개발사업단 연구위원은 “지난해 왕위에 오른 살만 빈 압둘아지즈 국왕은 즉위 직후 2030년까지 국가를 대대적으로 바꾸는 개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며 “첫 5개년 계획에 스마트 원전 개발을 넣고 3조~4조원 예산을 배정했다”고 말했다.
◆원전 유학 30년 만에 해외 전수
공교롭게도 올해는 한국 첫 원전 유학생이 원전설계 기술을 배우러 미국으로 떠난 지 30년이 된 해다. 1986년 12월 연구자 32명과 행정원 5명으로 구성된 37명의 첫 연구진이 원전 설계사인 미국 컴버스천엔지니어링(CE)으로 떠났다. 이렇게 육성된 인원 200여명이 울진 3·4호기에 처음 들어간 1000메가와트(㎿)급 첫 한국형 표준원전(OPR1000)을 완성했다.
사우디 정부는 한국의 원전기술 성장 모델을 주시하고 있다. 하심 빈 압둘라 야마니 사우디 왕립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장은 지난 6월 이번에 파견된 연구자에 대한 오리엔테이션에 참석해 “한국이 원전 기술을 자립했듯 잘 배워 돌아와달라”고 강조했다. 사우디 원전 유학생 1호로 기록될 연구자는 엄격한 기준으로 뽑았다. 탈랄 알하비 연구원(27)은 사우디의 신흥 명문인 킹압둘아지즈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매사추세츠주립대를 거쳐 지난해 원자력신재생에너지원에 합격했다. 오쌈 이슬람 연구원(29)은 미국 테네시공대를 졸업하고 사우디 나스항공사에서 간부로 일하다 원전 개발에 참여하기 위해 지원했다.
◆메카 향한 기도실까지 만들어
사우디 연구자들은 7월14일 국내에 입국했다. 원자력연은 한국의 낯선 환경에 적응하도록 국내 체류문제를 비롯해 휴대폰 개통, 은행계좌 신설, 주택 알선을 원스톱으로 지원했다. 사우디 연구자들이 근무하는 건물에는 사우디 메카를 향해 있는 기도실까지 들어섰다. 돼지고기와 동물의 피, 알코올 등을 금하는 이슬람 문화를 고려해 구내식당에는 재료를 상세히 적은 안내판을 세웠다. 이슬람 휴일인 금요일에는 교육시간을 잡지 않았다.
박근태 기자 kunta@hankyung.com
[한경닷컴 바로가기] [스내커] [한경+ 구독신청]
ⓒ 한국경제 & hankyung.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