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금리인상, 유럽은 양적완화…통화정책 '서로 다른 길'
급격한 달러강세는 미국 경기 재둔화 초래…보완책 강구할 것
환차익 노린 달러 사재기 '위험'…원화환율 급등 상황 없을 것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고용시장과 경제전망 개선으로 금리를 인상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오는 20일부터 이틀간 열릴 미국 중앙은행(Fed) 회의가 임박한 때에 재닛 옐런 Fed 의장의 잭슨홀 발언을 계기로 금융위기 이후 같은 길(GC·Great Convergence)을 걸어온 Fed와 유럽중앙은행(ECB)을 비롯한 다른 선진 중앙은행이 앞으로는 서로 다른 길(GD·Great Divergence)을 갈 것이라는 예상이 급부상하고 있다. ‘GC’와 ‘GD’는 세계화 논쟁에서 비롯됐다. 전자는 세계화가 진행될수록 선진국과 신흥국 간 경제력 격차가 줄어든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의 칼럼니스트인 마틴 울프가 주장했다.
후자는 오히려 그 격차가 벌어진다고 캐네스 포메란츠 캘리포니아주립대 교수가 반박했다. 소득 불균등을 놓고 벌인 토마 피케티와 앵거스 디턴 간 논쟁도 같은 맥락이다.
GD는 벌써 시작됐다. 작년 12월 Fed는 출구전략의 일환으로 2014년 10월 말 양적완화(QE) 종료에 이어 금리인상을 단행했다. 출구전략이란 금융위기로 흐트러졌던 비정상 국면을 정상 국면으로 돌려놓는 것을 말한다. ‘푸는 것’보다 ‘회수하는 것’이 더 어려운 통화정책 관행을 감안하면 또 하나의 험난한 길이 시작되는 셈이다.
비슷한 시기에 ECB는 마이너스 금리 폭을 확대하고 양적완화 시한을 연장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필요하다면 언제든지 추가 금융완화책을 보완하겠다는 의사도 빼놓지 않았고, 그 후 필요할 때마다 실행에 옮겼다. 아베노믹스(아베 정부의 경제정책)에 한계를 느낀 일본은행도 마이너스 금리제를 도입했다.
1994년 이후 20년 만의 대분기
Fed와 ECB(다른 선진 중앙은행 포함)는 실물경제 여건 면에서 격차가 크지 않는 한 동일한 통화정책 기조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해 왔다. 세계 경제와 국제금융시장의 안정을 기하기 위한 묵시적인 합의 때문이다. Fed와 ECB가 서로 다른 길을 걷는 것은 1994년 이후 21년 만에, 1999년 ECB 설립 이후 처음 있는 일이었다.
GD가 일어난 1994년 이후 상황을 보면 독일 분데스방크는 금리를 연 5%에서 4.5%로 내렸다. 같은 시점에 Fed는 연 3.75%에서 4.25%로 인상한 이후 1년도 못 되는 짧은 기간 안에 6%까지 올렸다. 1995년 4월에는 일본 경제를 살리기 위해 엔저·달러 강세를 유도하기 위한 ‘역플라자 합의’도 도출됐다.
미국 경제도 견실했다. 빌 클린턴 정부 출범 이후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되는 정보기술(IT)이 주력산업으로 부상하면서 ‘신경제 신화’를 낳았다. 경제 위상도 높았다. 그 결과 ‘외자 유입→자산가격 상승→부(富)의 효과→추가 성장’의 선순환 고리가 형성되면서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됐다.
신흥국은 대규모 자금 이탈에 시달렸다. 1994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1998년 러시아 국가채무 불이행 사태까지 이어지는 신흥국 위기가 발생(‘그린스펀 쇼크’라 부른다)했다. 미국도 슈퍼 달러의 부작용을 견디지 못하고 2000년 이후에는 ‘IT 버블붕괴’라는 위기상황을 맞았다.
금리차 벌어지지 않게 관리할 것
추가 금리인상 문제를 놓고 옐런 의장이 고민해온 것도 이 때문이다. 21년 전과 달리 실물경제 여건이 여의치 못한 상황에서 GD로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된다면 경기가 언제든지 침체국면으로 재추락할 위험이 높다. 현실화된다면 ‘제2의 에클스 실수’에 해당하는 ‘옐런의 실수’다.
신흥국도 마찬가지다. 2008년 이후 미국, 유럽으로 이어지는 선진국 위기와 2012년 이후 원자재 가격의 슈퍼 사이클 국면이 종료되면서 경기침체 국면에 들어갔다. Fed의 추가 금리인상이 지연되고 원자재 가격이 반등하면서 최근에야 숨통이 터지는 상황이다. 1990년대 중반보다 못한 펀더멘털 여건에서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에 따라 자금이탈이 발생할 경우 원자재 수출국을 필두로 언제든지 위기가 닥칠 가능성이 높다.
현 여건에서 미국의 추가 금리인상에 따라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될 경우 미국과 신흥국 모두 최악의 시나리오를 맞을 수 있다. Fed는 최악의 결과(pay-off)를 낳을 수 있는 게임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전통이다. 이 때문에 금리인상 이후 슈퍼 달러 시대가 전개될 수 있는 GD가 나타나지 않도록 보완책을 강구할 가능성이 높다.
두 가지 조합이 예상된다. 하나는 추가 금리인상 이후 달러 강세 기대심리를 차단하기 위해 인상 속도를 완만하게 가져가는 경우다. 기준금리를 변경할 때 그 폭은 0.25%포인트씩 가져가는 ‘노멀 스텝’, 0.5%포인트 이상 변경하는 ‘빅 스텝’, 0.25%포인트보다 좁게 가져가는 ‘베이비 혹은 쇼트 스텝’이 있다. 인상 시기도 Fed 회의 때마다 단행하는 ‘순차적인 방식(step by step)’과 인상 이후 한동안 관망하다가 다시 단행하는 ‘가다 서다(go stop)’ 방식이 있다.
미국처럼 기준금리를 ‘제로’까지 낮춘 수준에서 출발하는 금리인상에서 ‘베이비 스텝’은 의미가 없다. 언제든지 경기 재둔화(제2의 에클스 실수) 우려가 높은 ‘빅 스텝’과 같은 의미를 갖고 있는 ‘순차적인 방식’도 선택하기 어렵다. 작년 12월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한 단계 올리고 지금까지 올리지 않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다른 하나는 추가 금리인상을 계기로 시중 금리가 급등(‘옐런 수수께끼’라 부른다)할 경우 장기채를 매입하는 ‘리버스 오퍼레이션 트위스트’를 추진해 GD의 격차가 더 벌어지지 않도록 노력하는 경우다. 채권시장 거품 붕괴 우려가 높아지는 여건에서는 이 정책은 그 어느 때보다 추진될 가능성이 크다.
달러 투자엔 중용의 지혜를
한국은 1994년 이후 상황과 다르다. 당시에는 대규모 경상적자가 외환위기로 치달으면서 원·달러 환율이 2000원 선까지 급등했다. 지금은 경상흑자(국내총생산 대비)가 세계 1, 2위를 다툰다. 미국 추가 금리인상 이후 슈퍼 달러를 겨냥해 달러 사재기에 나서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열풍이 불면 투자자는 반드시 덴다.’ 중용의 지혜를 발휘해야 할 때다.
GD가 시작되면 원자재 시장도 큰 변화가 예상된다. 광물성, 비광물성 가릴 것 없이 1999년 이후 원자재 가격은 같은 운명(커플링)을 걸어왔다.
‘상승’과 ‘하락’으로 세분하면 2011년까지는 ‘슈퍼 업 사이클’, 2012년 이후에는 ‘슈퍼 다운 사이클’로 구별된다. 앞으로 광물성은 ‘하락’, 비광물성은 ‘상승’ 국면으로 다른 길(디커플링)을 걸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상춘 객원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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