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8살 강씨 "열악해도 뭐, 성공하려면"
27살 김씨 "시급으로 최저임금 안돼요"
30살 권씨 "이렇게들 당당해도 되나 싶어요"
[편집자 주] 미디어 화두는 단연 MCN (멀티채널네트워크) 입니다.
영상이 모바일 콘텐츠의 '절대강자'로 군림하자 재기발랄하고 젊은 크리에이터들이 영상 제작에 너도 나도 뛰어들고 있습니다. 유튜브, 다이아TV(CJ E&M), 네이버, 카카오, 아프리카TV 플랫폼에 올라온 스마트폰 최적화 영상 콘텐츠에는 매 분 매 초 수십만개의 '좋아요' 세례 가 쏟아집니다. 크리에이터의 몸값도 치솟고 있죠. 그래서 우린 매월 스마트폰 데이터의 57.6%를 영상 보는 데 씁니다(미래창조과학부). 대부분 MCN 연합군이 퍼붓는 짧고 파괴적인 영상 콘텐츠들 말입니다.
흔한 과자마냥 언제 어디서나 쉽게 소비하는 이런 스낵 컬처 열풍 이면에는 허나 불편한 진실이 있습니다. 그 스낵 컬처를 만드는 사람들조차 쉽게 소비되죠. 다섯번째 ‘청년표류기’ 는 MCN의 화려한 조명이 닿지 않는 카메라 이면에서 쉽게 쓰이고 버려지는 청년들을 조명합니다.
MCN 현장에서 일하는 청년 3명을 인터뷰해 재구성했습니다.
28살 강진구(가명) 씨는 영화감독이 꿈입니다. 서울 4년제 대학 영문학과에 입학했지만 복수전공한 영상학과 학점을 채우지 못해 졸업은 못했습니다.
“졸업 작품으로 20분 단편영화를 준비 중인데 경험이 부족해요. TV 드라마 촬영장에서 연출부 막내로 3개월 일한 게 다예요. 심부름만 했죠. 그 때 눈에 띈 게 10분짜리 웹드라마였어요. 짧은 시간 동안 뮌?걸 배울 수 있을 거라 생각했죠."
현장에서 무슨 일을 했나요?
“연출부 조감독. TV 드라마는 연출부가 여러 명입니다. 촬영신 기록하는 사람, 슬레이트 치는 사람, 현장 진행돕는 사람 등 다양하게 있죠. 근데 이번엔 저 혼자 다해요.”
혼자 다 한다는게 무슨 뜻이죠?
“우선 가장 빨리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해요. 아침 8시 촬영이면 배우들은 늦어도 7시까지 메이크업 받으러 와요. 저는 그 전에 촬영 준비를 하죠. 촬영 중에도 쉴 틈 없어요. 소품 준비하고, 장비 나르고, 스케줄 조정하고, 촬영장 뒷정리까지. 일주일 세번은 촬영장서 자요. 집 갔다 오면 2~3시간 밖에 못 자니까. 주말에 쉰 적도 거의 없죠.”
고생한 만큼 돈은 받았나요?
“한 달하고 열흘 더 해서 120만원. 야근이나 휴일수당은 없어요. TV 드라마 찍을 때는 힘들어도 200만원은 받았는데. 한달 계약이 120만원이지만 10일 치 추가 수당은 안 주더라고요.”
열흘 추가 촬영했는데 왜?
“애초에 근로계약서를 안줬어요. 구두계약했죠. 근데 어쩌겠어요. 싫어도 이런 게 스펙인데. 이 바닥에 있고 싶고, 성공하고 싶어요. 열약해도 할 수밖에 없어요. 애들 다 그러고 사는데요 뭐.”
27살 김세형(가명) 씨. MCN 프로덕션에서 1년 간 PD로 일했습니다. 원래 그래픽 디자이너였습니다. 광고용 영상을 찍다가 그래픽이 아닌 실사(實寫)를 다루기로 결심했죠.
“당시 대기업 디자이너로 갈 기회가 있었어요. 근데 조금이라도 어릴 때 하고 싶은 걸 해보고 싶었어요. 웹드라마 만드는 신생 프로덕션을 택했죠. 스타트업 환상도 있었어요. 큰 회사의 작은 톱니바퀴보다 작지만 모터가 되는 상상을 했었죠.”
모터는 잘 돌아갔나요?
“1년 동안 쉬지 않고 돌다 결국 고장 나버렸죠. 웹드라마는 짧은 만큼 제작비도 적어요. 장비는 TV 드라마와 별반 차이 없는데 말이죠. 결국 줄일 수 있는 건 인건비 뿐. 배우는 몸값 싼 신인들이었고, 소수 스태프는 일당백으로 일했죠. 제작에 관련된 모든 일을 하다 보니 몸이 많이 망가졌어요.”
주로 무슨 일을 했나요?
“시나리오를 토대로 촬영 틀을 잡았는데 배우, 스태프, 촬영장 섭외 등 제가 다했죠. 준비가 끝나면 촬영 동선을 맞춰야해요. 그래야 같은 날 첫 화와 마지막 화를 찍을 수 있죠. 순서를 정한 뒤에는 촬영에 필요한 물건 협찬이나 협조 구하느라 백방으로 고생했어요.”
근무 환경은 어땠나요?
“보통 아침 아홉시 출근했어요. 점심시간도 따로 없었어요. 컴퓨터 앞에서 밥 먹기가 다반사였죠. 그렇게 일해도 매일 야근이었어요. 어느 날, 촬영 장소 섭외하다 퇴근한 적이 있어요. 지하철에서 한강 노을을 봤는데 감동 받았어요. '이 시간에 내가 집에 가다니'. 웃기고도 슬픈 일이었죠.”
가장 힘들었던 건 뭔가요?
“결국 돈 문제였죠. 드라마 한편 찍는데 정말 돈 많이 들어가요. 촬영 카메라를 빌리는 몇 백만 원부터 배우들 머리 염색비까지. 저도 한 달에 180만원 받았는데 많다고는 할 수 없어요. 하루 12시간 이상, 주말 다 반납하고 일한 거니까. 시급으로 따면 최저임금도 안돼요."
수익은 어떻게 내나요?
“웹드라마 투자가 많지 않으니 예산도, 뚜렷한 수익모델도 없어요. 답답하죠. 그렇다고 열악한 대우를 정당화할 순 없어요. 촬영을 하다 보면 물론 더 일할 수도 있는데, 그럼 일한 만큼 돈은 줘야죠. 그게 상식이잖아요.”
권진만(가명) 씨는 30살 8년 차 촬영감독입니다. 제대 뒤 23살부터 영화 밥을 먹었습니다. 그런 그가 MCN으로 넘어온 사연은 이랬습니다.
“영화는 작년에 관뒀어요. 너무 힘들어서. 올초엔 평범한 회사원으로도 살아봤어요. 근데 카메라 잡는 게 제일 좋더라고요. 그때 촬영감독 채용 공고를 봤죠. 모바일 시장의 가능성을 봤어요. 앞으로 더 커질테니 새로 도전하고 싶었어요. "
겪어보니 새로웠나요?
“새롭긴 새로웠죠. 영화에 비하면 말도 안 되는 일들의 연속이었거든요. 아직 MCN 현장에 쳬계적 시스템이 없어요. 기준 없이 주먹구구식 일처리를 해요. 가장 놀랬던 건 촬영팀이 제대로 꾸려지지 않는다는 거예요. 촬영도 팀이 기본인데 그냥 남는 스태프가 돕는 식이죠. 힘들 수 밖에요.”
어떤 일이 힘들었나요?
“촬영 장비 진짜 무겁거든요. 중노동 중의 중노동이에요. 어릴 때 겪었던 공사판보다 힘들면 힘들었지 결코 쉽지 않아요. 호흡이 맞는 팀이 꼭 필요해요. 근데 모든 걸 혼자 했으니 답답했죠.”
일한 만큼 급여는 받았나요?
“저는 회차 당 받았어요. 영화 찍을 때보다 적었죠. 금액을 밝히긴 어렵지만 상당히 적습니다. 같은 시간 공사판 나가는 거보다 덜 번다고만 말씀드릴 수 있어요. 스태프들 고정 수입이 없는게 이 바닥 현실입니다.”
일당 근로자이군요?
“그렇죠. 근데 일당이 많냐, 전혀 아니에요. 안타까워요. 일당 카메라 보조로 왔던 분은 아침 8시에 와서 다음 날 새벽 1시까지 일하고 8만원 받아 갔어요. 17시간 일한 대가가 8만원.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이 바닥 스태프들이죠.”
인터뷰 중 진만 씨는 영상 관련 인력이 자주 드나드는 한 인터넷 커뮤니티를 소개했습니다. MCN 용 영화, 드라마, CF 제작 관련 영상 스태프를 모집하는 공고가 대부분입니다.
“(이 공고를 스마트폰으로 보여주며) 음향 스태프를 뽑는 내용입니다.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까지라고 나와있죠. 무려 19시간입니다. 문제는 새벽 2시에 정말 끝날지 아무도 모른다는 거에요. 밤 새운다고 생각하고 가는 게 그냥 맘 편합니다. 더 웃긴 건 대놓고 개인 사운드 장비를 가지고 오면 하루 일당 15만 원, 개인 장비 없으면 그냥 10만 원입니다. 사운드 장비마다 다르겠지만 대여료를 왜 근로자가 부담해야 해요? 더 희안한 한 것도 많아요.”
“이건 감독 구하는 공고입니다. 근데 급여 란에 보세요. "페이 없습니다" 입니다. 경력 필모그래피를 쌓고 싶으면 그냥 무임금으로 일하라는 거에요. 근데 급여가 없는게 말이 됩니까. 이렇게들 당당해도 되나 싶어요. 아직도 이런 업체가 있다니 보면 화가 치밀어요. 나머지 공고들도 대부분 하루 종일 일하고 10만 원 미만 페이예요. 열정 없이는 이 바닥 일 못해요. 근데 열정이 있다고 모든 게 해결될까요. 그 열정이 오래 갈까요.”
# ‘청년 표류기’ ? 세상과 사회라는 뭍에 무사히 닿기 위해 표류하는 우리네 청춘의 이야기입니다. 청년과 소통하기 위해 명함 대신 손을 내밀고, 넥타이 대신 신발 끈을 묶습니다. 여러분의 '청년 표류기'를 공유해주세요. 뉴스래빗 대표 메일이나 뉴스래빗 페이스북 메시지로 각자의 '표류 상황'을 알려주세요. 함께 고민하고 해결하는 과정을 기록하겠습니다.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책임= 김민성, 연구= 이재근 한경닷컴 기자 rot011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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