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노 벡 / 알로이스 프린츠 지음 / 이지윤 옮김 / 재승출판 / 399쪽│1만8000원
"인생에서 확실한 건 죽음과 세금"
독일 경제학자, 세금의 민낯 보여줘
중세 이후 창문세·수염세 등 창의성(?) 발휘한 세금 눈길
좋은 세제란 무엇일까
"국민이 실제 내는 세금 알게 해야"
예수, 나폴레옹, 알 카포네의 공통점은? 답은 세금이다. 예수가 마구간에서 탄생한 것은 요셉과 마리아가 과세용 호적등록을 위해 베들레헴으로 가야 했던 탓이다. 나폴레옹은 조세저항으로 전비 조달이 막힌 반면, 영국 피트 총리는 노다지와 같은 세원(소득세)을 발굴해 전쟁을 승리로 이끌었다. 알 카포네는 무수한 범죄와 살인교사에도 끄떡없었지만 탈세 기소만큼은 피하지 못했다.
인생에서 확실한 것은 죽음과 세금뿐이란 말이 있다. 세금 내기 싫은 것은 동서고금이 똑같다. 그렇기에 세금은 사람들의 행동을 바꾸고, 나라를 바꾸고, 역사를 바꾼다. 스페인 제국은 악명 높은 ‘알카발라(판매세)’와 그로 인한 탈세로 몰락했고, 프랑스혁명과 미국 독립전쟁도 과중한 세금이 뇌관이었다.
독일 경제학자 하노 벡과 알로이스 프린츠의 《세금전쟁》은 ‘인류 역사=세금의 역사’이고 ‘현대 정치=세금특혜 정치’란 사실을 흥미진진하게 일깨워준다. 걷으려는 자와 숨기려는 자 간의 5000년 기나긴 전쟁이 곧 역사란 것이다. 이 책에는 세금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례가 풍성하다. 고대 수메르의 한 점토판에는 “한 나라가 끝나고 다른 나라가 와도 세리(稅吏)는 있다”는 글귀가 있다. 로제타스톤은 이집트 상형문자, 민중언어, 그리스어 등 세 언어로 새겨졌는데 그리스어는 그리스인 세리들에게 신전은 면세 대상이니 딴 데 가서 뜯으라는 내용이었다.
저자들은 역사를 관통하는 세율이 10%라고 설명한다. 구약성서 ‘레위기’ 27장은 십일조 예물을 설명하는 데 할애돼 있다. 공자도 이상적 세율을 10% 이내로 꼽았고, 칭기즈칸은 정복지에서 10%의 조공만 받았다. 세금을 늘릴 때는 세율 인상 대신 농작물 10%, 토지 10% 식으로 세목을 늘렸다.
그러나 중세 이후 국가가 점차 세금강도로 돌변해간 과정도 흥미롭다. 유럽의 멋진 고성들이 실은 상인, 행인들에게 통과세를 걷는 장소임을 알고 나면 경탄 대신 탄식이 나올 법하다. 조선 양반들처럼 유럽의 귀족과 성직자는 세금을 안 냈다. 대신 평민들의 세부담은 잦은 전쟁에 비례해 높아졌다. 또한 국가는 창문세, 수염세, 조명세, 살인세 같은 기발한 세금으로 세원 발굴에 ‘창의성’을 발휘했다. 살인세란 영국의 헨리 2세 때 6개월 이상 살인범을 못 잡으면 관할 지방관의 직무태만으로 간주해 공물을 바치게 한 제도다.
하지만 근대 이전의 어떤 나라보다도 배짱이 훨씬 두둑한 게 현대 국가라고 저자들은 꼬집는다. 16세기 농민반란은 소득의 절반이 세금으로 나가는 시점에 일어났다. 반면 오늘날 독일 독신자의 세금과 사회보장료는 소득의 53%에 이른다. 독일의 세금해방일은 7월14일로, 1년에 절반 이상을 국가를 위해 돈 벌어 갖다 바치는 셈이다. 한국의 세금해방일이 3월20일인 게 다행이다 싶다.
세금이 무겁다고 느낄수록 탈세도 늘어나게 마련이다. 준법정신이 투철한 독일인들조차 곧이곧대로 세금을 내면 바보 취급하며 탈세를 ‘떠오르는 국민스포츠’ 또는 ‘정당방위’로 여길 정도란다. 실제로 테니스 스타 슈테피 그라프의 부친은 소득탈루로 3년9개월형을, 보리스 베커는 탈세혐의로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받았다. 절세도 산업화돼 호황을 구가한다.
한국 세법이 감면·면제조항이 하도 많아 누더기에 비유되듯 독일 세법은 ‘구멍 뚫린 치즈’로 불린다. 정치인들이 세금특혜 공약을 남발한 결과다. 직접 지출을 늘리는 것보다 예외조항을 둬 정부 재정에 구멍을 내는 게 훨씬 수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세제혜택은 규모를 정확히 알 수 없어 은폐할 수 있다. 그렇게 구멍 난 재정은 기업과 고소득층에 대한 세율 인상이나 세목 신설로 벌충한다는 게 저자들의 비판이다. 한국 야권이 법인세 인상에 그토록 집착하는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좋은 세제란 어떤 것일까. 저자들은 세제를 간소화해 시민들이 자신이 실제 내는 세금을 알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야 특정 이해집단을 위한 선심성 세금특혜가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하지만 세법을 만드는 정치인들에게 세금이 어떤 부작용을 낳는지(초과부담), 누가 실제 부담하는지(귀착), 누구에게 떠넘기는지(전가) 등에 대한 깊은 고려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게 문제다.
이 책은 세금의 역사와 오늘날 시민으로서 알아야 할 세법의 문제점을 공부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독일 사례 위주지만 세금 작동원리는 어느 나라나 별 차이가 없다. 그러나 조세저항 방식은 천차만별이다. 미국인은 티파티 같은 반대단체를 조직하고, 독일인은 연간 1000만건 이상 이의신청을 하지만 한국인은 댓글달기 수준이다. 세금을 두들겨 맞더라도 알고나 맞자.
오형규 논설위원 oh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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