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수진 기자 ] 세계 최대 온실가스(탄소) 배출국인 미국과 중국(G2)이 지난 3일 유엔기후변화협약(파리협약)을 공식 비준했다. G2 스스로가 탄소 배출 약속을 지키겠다고 선언하면서 파리협정 비준에 소극적인 다른 나라에 수입규제를 적용하거나 비관세장벽을 설치하는 등 통상압력을 가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세계 경제질서를 좌우하는 두 나라가 탄소 배출 감축 노력을 기준으로 교역국 등에 불이익을 줄 수 있기 때문에 사실상 글로벌 탄소전쟁의 시작으로 볼 수 있다”고 진단했다.
EU 비준도 속도 낼 듯
지난해 12월 체결된 파리협정은 갖가지 기상이변 등을 일으키는 지구온난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기적으로 지구 온도 상승분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2도 이내로 묶어놓자는 목표를 내걸었다. 이를 위해 196개국이 탄소 배출량 감축 계획을 제출했다.
미국은 2025년까지 2005년 대비 26~28%, 중국은 2030년까지 2005년 대비 60~65% 줄이겠다는 계획을 냈다. 한국은 2030년 배출 전망치보다 37% 감축하겠다고 했다.
파리협정은 온실가스 배출량의 55% 이상을 차지하는 55개국이 비준하면 자동 발효되지만 그동안 비준 절차가 지지부진했다. 24개국이 비준했으나 이들 국가가 차지하는 탄소배출 비중은 1.08%에 불과했다.
그러나 미국과 중국이 비준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두 나라 배출 비중은 38%다. 국제사회에서 영향력이 큰 미·중의 적극적인 참여로 파리협정이 구속력 있는 국제조약으로 효력을 발휘할 계기가 마련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또 미·중의 비준으로 12.1%를 차지하는 유럽연합(EU)의 비준도 속도를 낼 가능성이 커졌다. EU까지 비준하면 사실상 협정 발효에 필요한 조건이 충족되는 것이다.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은 이날 미·중 양국 정상에게서 협약 비준서를 전달받은 자리에서 “연말까지 협정이 발효될 것으로 낙관한다”며 “뉴욕에서 고위급 행사를 펼쳐 다른 국가 지도자들도 파리협정을 공식 비준하도록 초청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탄소배출 빌미 통상압력 강화 우려
미국이 파리협정을 전격 비준하고 나선 것은 탄소전쟁(온실가스 배출 감축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그동안 탄소전쟁의 주도권은 EU가 잡고 있었다. EU는 창설 50주년이던 2007년부터 탄소세, 탄소배출권거래제 등 강력한 온실가스 규제를 도입했다. 지구 위기를 막는다는 ‘대의’ 아래 탄소 배출을 규제하고, 탄소 배출이 많은 국가와 제품에 불이익을 주는 국제표준을 장악한다는 전략이었다.
EU는 이런 자체 기준을 해외 기업의 역내 진출을 막는 수단으로 활용했다. 2005년 당시 기아자동차와 쌍용자동차가 EU에서 자동차 수출 자제 요청을 받은 것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EU는 교토의정서를 근거로 자동차에 강화된 탄소배출 기준을 적용했다.
전문가들은 파리협정이 발효되면 이런 통상규제가 더욱 강화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과거 교토의정서에는 온실가스 감축 의무 이행과 무역차별 조치를 결부해선 안 된다는 조항이 있었다. 그러나 파리협정에는 그런 문구도 없다. ‘보호무역주의’ 발톱을 감추지 않고 있는 미국이 온실가스 감축을 무기로 수입 규제나 각종 비관세장벽 구축 등의 압력행사에 나설 가능성이 있다는 분석이다.
워싱턴 외교가에서 미국은 이런 경제질서를 조성하기 위해 중국을 참여시키는 대신 중국 현안인 세계무역기구(WTO) 내 시장경제지위(MES) 확보를 보장해주는 ‘빅딜’을 했다는 설명이 나오고 있다.
워싱턴=박수진 특파원 ps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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