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메리카에 있는 나라 중 어떤 나라가 잘 살고, 못 사는지를 구분한 뒤 공통점과 다른 점을 토론해보자.
[ 고기완 기자 ] 남미 국가들이 모두 엉망인 것은 아니다. 지도를 보면 희한하게도 괜찮은 나라들이 서쪽에, 영 엉망인 나라들이 동쪽에 몰려 있다. 이를 두고 사람들은 ‘잘나가는 서부라틴(태평양 동맹)’, ‘추락하는 동부라틴(메르코수르 동맹·남미공동시장)’이라고 부른다. 서부라틴 국가들은 자신들이 동부라틴 국가들과 비교당하는 것을 아주 싫어한다. “우리는 쟤네들과 달라”다.
칠레·페루·콜롬비아
서부라틴 리그에 속하는 나라는 칠레, 페루, 콜롬비아다. 지리적으로 약간 떨어져 있지만 멕시코도 포함된다. 이들 나라는 정치적으로 큰 잡음이 없을 뿐 아니라 경제도 안정적이다. 2012년 ‘태평양 동맹’을 결성한 이들 나라 중 페루는 착실히 성장하고 있다. 지난해 페루 경제성장률은 3.3%였다. 당시 중남미 평균인 마이너스 0.7% 성장을 크게 仟뎬?놀라운 성과다.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제조업을 키우고 보호무역을 철폐한 덕분이라고 세계은행은 분석했다. 복지비도 국가 능력에 맞춰 최소화한 결과였다. 남미 국가 중 최고의 성장률을 보인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셈이다.
페루에 이어 콜롬비아가 3.1%, 멕시코가 2.5%, 칠레가 2.1% 성장했다. 세계 경제가 크게 위축돼 있었는데도 이들 나라는 견실한 성장을 이뤘다. 이들 나라는 올해도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이 2~3.5%에 이를 것이란 전망이 많다. 이런 성장을 인정받아 이들 국가의 신용등급은 지난해 모두 한 단계씩 올라갔다.
서부라틴은 국가채무도 안정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정부가 대중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 정책에 몰입해 예산을 펑펑 쓰면 나라빚은 늘어나게 돼 있다. 하지만 이들 나라는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낮다. 지난해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GDP 대비 국가채무 비중은 칠레의 경우 15.1%에 불과하다. 중남미 국가 중 최저 수준이다. 페루는 20.7%, 콜롬비아는 44.3%, 멕시코는 49.7%다. 모두 중남미 평균보다 밑이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든 것도 성장에 밑거름이 됐다. 세계은행이 지난해 ‘2015 사업하기 좋은 중남미 국가’를 발표한 적이 있다. 여기에서 콜롬비아, 페루, 멕시코, 칠레가 1~4위에 올랐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잘산다’를 보여준다. 자금조달, 통상, 기업청산 제도 등 여러 면에서 ‘태평양 동맹국’들은 높은 점수를 받았다. 자유무역에 적극적인 것도 공통점이다. 멕시코와 페루는 40개국과, 칠레와 콜롬비아는 60개국과 각각 자유무역협정(FTA)을 맺고 있다.
베네수엘라·아르헨·브라질
우리가 흔히 ‘망해가는 남미’라고 할 때 포함되는 나라들이 바로 브라질, 베네수엘라, 아르헨티나다. 남미 좌파벨트다. 브라질은 3면에서 읽은 것처럼 요즘 최악의 국면에 빠져 있다. 동부라틴에는 브라질보다 최악인 나라가 있다. 바로 베네수엘라다.
베네수엘라는 그리스와 함께 포퓰리즘으로 무너진 대표적인 나라로 악명이 높다. 베네수엘라의 경제고통지수(미국 경제학자 아서 오쿤 고안·국민이 피부로 느끼는 경제적 삶의 어려움 표시=소비자물가상승률+실업률)가 세계 최고인 159.2였다.
베네수엘라에 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세계 석유매장량 2위이자 남미 최대의 산유국으로 돈이 넘쳐났다. 하지만 석유는 베네수엘라에 ‘자원의 저주’만 안겼다. 석유를 은혜가 아닌 저주로 이끈 이가 바로 이미 사망한 차베스라는 정치 지도자다. 1998년 권력을 잡은 그는 사망한 해인 2013년까지 16년 동안 석유를 판 돈을 무상교육, 무상의료 등 공짜 복지에 쏟아부었다. 국민은 열광했다. 일을 안 해도 정부 지원금이 펑펑 쏟아져 나오자 국민이 일하기 싫어했다. 모럴해저드(도덕적 해이)가 극에 달했다. 석유를 판 돈으로 공장을 짓거나, 중화학 공업을 육성하거나, 첨단산업을 구축하지 않은 결과 베네수엘라는 아무런 산업기반을 갖추지 못하게 됐다. 흥청망청 노는 와중에 국제 원유가격이 폭락하자 베네수엘라는 지옥으로 떨어졌다. 국가 재정의 절반가량을 석유판매액으로 충당해오던 베네수엘라는 나라 살림을 유지하기 힘들어졌다. 전체 수출액의 96%를 석유수출에 의존하던 경제가 망했다. 수입에만 의존해오던 식료품과 생필품은 동이 났다. 화폐가치는 폭락해 도둑도 돈을 훔쳐가지 않는 처지가 됐다. 물가상승률은 무려 700%를 넘었다.
아르헨티나도 불안하긴 마찬가지다. 이 나라는 수시로 국가부도 위험에 몰렸다. 2014년엔 여덟 번째로 채무불이행 위기에 빠졌다. 아르헨티나만큼 자원의 축복을 받은 나라도 드물다. 비옥한 땅, 가스 등 천연자원이 풍부하다. 하지만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사이먼 쿠츠네츠조차 “세계는 선진국, 후진국, 일본, 그리고 아르헨티나로 구분한다”고 비아냥거렸을 정도로 아르헨티나는 정치적 불안정과 경제적 포퓰리즘으로 휘청거렸다. 중진국 함정에 빠진 우리나라에 아르헨티나만큼 좋은 반면교사(反面敎師)는 없다.
고기완 한국경제신문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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