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의 향기] 중세 건축…라파엘로의 붓질…유럽, 예술 속을 거닐다

입력 2016-09-11 16:27  

유럽 문화 '200% 즐기기'

구스타프 클림트와 '키스'할 오스트리아빈

건축학도들이 선망하는 영국 글래스고

'천공의 성 라퓨타'로 떠나는 크로아티아 모토분

보헤미아 왕국 '천년 도시' 체코 프라하



[ 최갑수 기자 ]
유럽의 거리를 걸으면 도시 풍경들이 마치 엽서에 나오는 사진처럼 화려합니다. 오래된 건축물과 대성당 그 사이로 현대식 건물들이 공존합니다. 오래된 시간이 도시 속에 녹아있습니다. 유럽 여행이 좋은 이유는 단지 기막힌 풍경 때문만은 아닙니다. 유럽의 각 곳을 돌아다니다 보면 미술은 물론이고 음악의 향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박물관에는 그리스 로마 시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빼어난 미술가들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도시 건축물 하나하나가 예술품 같은 나라도 있습니다.

나라마다 독특한 음식을 즐길 수 있는 것도 유럽여행의 묘미입니다. 문화와 예술, 식도락의 재미가 함께 하는 유럽의 중부 중심도시 오스트리아에서 동서부의 대표적인 국가인 영국의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체코, 크로아티아를 소개합니다.

오스트리아 빈 - 豈같?라면 서러울 예술 도시

빈은 예술이 점령한 도시다. 지금은 쇠락했지만 한때 유럽을 호령했던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해 놓은 어마어마한 예술품들이 이 고고한 도시의 우아함을 여전히 유지해주고 있다. 미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며칠 동안 미술관 여행을 할 수 있는 곳이 바로 빈인데, 미술사박물관, 레오폴트미술관, 알베르티나미술관, 쿤스트하우스 등 세계적 명성의 미술관들이 어깨를 맞대고 자리하고 있다.

특히 합스부르크 왕가에서 대대로 모아온 중세·근대 미술품들을 보유한 미술사박물관은 세계적인 규모와 수준을 자랑한다. 4~18세기까지 세계 미술사를 아우르는 눈부신 회화 작품들과 고대 이집트 유물, 합스부르크 왕가가 수집한 조각 및 공예품 등으로 가득한 미술관을 돌아다니다 보면 하루는커녕 1주일도 턱없이 부족하다는 것은 깨닫게 된다.

오스트리아가 배출한 거장 구스타프 클림트의 ‘키스’ 원작을 감상할 수 있는 벨베데레 궁전, 천재 화가 에곤 실레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는 레오폴트미술관, 신디 셔면과 모리야마 다이도 등 현대 사진 거장들의 작품을 오리지널 프린트로 만나는 행운을 가질 수 있는 알베르티나미술관도 빼놓지 말아야 할 코스다.

무지크페라인에서 듣는 빈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연주도 감동이다. 빈필이 들려주는 요한 슈트라우스 왈츠를 듣다 보면 절로 어깨가 들썩인다. 빈의 오페라 극장은 좌석에 앉아 보려면 정장을 해야 하지만 입석표를 사면 자유로운 복장으로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 요금은 4유로 정도. 공연시간 약 2시간 전에 가면 입석표를 구할 수 있다.

◎ 비너 슈니첼은 이름에서 알 수 있듯 빈에서 시작해 전 유럽으로 대중화됐다. 송아지 고기를 납작하고 얇게 다진 뒤 밀가루와 계란,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겨낸 것이다. 여기에 레몬즙을 뿌리고 라즈베리 소스 등에 찍어 먹으면 상큼함이 더해진다. 빈의 커피는 2011년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 그 자체로 하나의 문화이고 명물이다. ‘카페 센트럴’은 1876년 문을 연 뒤 카페와 살롱 문화의 상징이 된 곳이다.

영국 스코틀랜드 글래스고
아르누보 스타일의 건축물로 가득한 도시

에든버러에서 버스로 1시간이면 닿는 글래스고는 아름다운 빅토리아풍의 건물과 현대적 건물이 잘 조화를 이루고 있는 도시다. 글래스고를 여행하다 보면 런던이나 파리, 뉴욕과는 또 다른 독특한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옛 우체국 건물의 내부를 그대로 살린 패션 숍, 빅토리아 시대의 벽지를 그대로 살린 펍 등은 전통과 현대의 묘한 어울림을 보여준다.

글래스고는 건축학도들이 꼭 한 번 가고 싶어하는 곳으로 꼽는 도시다. 글래스고는 건축가 찰스 레니 매킨토시의 고향이다. 도시 곳곳에는 매킨토시의 대표작들이 아름다움을 자랑하며 서 있다. 글래스고에서 태어난 그는 반듯한 직선과 식물에서 영감을 얻은 곡선을 조화시켜 아르누부 양식을 개척했다. 이후 가구까지 디자인한 그는 현대 가구의 걸작인 등받이가 높은 하이백 체어(High Backed Chair)를 디자인하기도 했다.

그가 디자인한 대표적인 건물이 글래스고 예술학교인데, 경사진 도로에 암벽처럼 우뚝 서 있는 건물은 어느 건축도 이루지 못했던 장중한 건축 형태를 보여준다. 또한 인테리어와 가구 및 장식 모두가 일관된 기하학적 연출로 꾸며져 세계적인 화제가 되기도 했다.

◎스코틀랜드에서 꼭 먹어봐야 할 음식은 ‘하기스(Haggis)’다. 대형 만두라고 보면 크게 틀리지 않는다. 양의 내장을 잘게 다져서 곡물과 섞은 것을 양의 위장에 채워서 삶은 음식이다. 스카치 위스키의 본고장에 온 만큼 펍에 들러 위스키 한 잔 마시는 기회를 놓치지 말자.

이탈리아 우르비노와 페사로
르네상스의 영광을 엿볼 수 있는 곳

이탈리아 마르케주의 우르비노는 화가 라파엘로가 태어난 도시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와 함께 르네상스 시대의 3대 거장으로 꼽히는 화가로 19세기 초 신고전주의 양식이 유행하기까지 3세기 이상 서구 회화의 지존 자리를 지킨 인물이다. 그가 남긴 ‘아테네의 학당’은 웅장한 건축물을 배경으로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당대에 이르기까지 명망 있는 철학자들의 모습을 그린 것인데, 전성기 르네상스 회화의 대표작으로 꼽힌다.

우르비노에는 14세기에 지어진 라파엘로 생가가 보존돼 있다. 집 안의 건물과 건물 사이에 있는 마당인 중정(中庭)을 품은 3층짜리 저택에는 생전에 그가 사용하던 가구와 화구가 고스란히 남아있다.

우르비노에서는 르네상스 초기에 지어진 궁전 중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자랑하는 두칼레 궁전에서 라파엘로를 비롯해 ‘회화의 군주’로 불리는 티치아노의 작품들,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의 걸작 ‘세니갈리아의 성모’ 등 눈부신 ‘르네상스 컬렉션’을 만날 수 있다.

우르비노에서 차로 45분 정도 떨어져 있는 인구 9만명의 도시 페사로는 ‘세비야의 이발사’를 작곡한 로시니가 태어난 곳이다. 1792년 페사로에서 태어난 그는 6살에 교회 성가대에서 활동했고 14살에 오페라를 만들었다. 그가 첼로와 피아노, 작곡을 체계적으로 배운 곳은 볼로냐 음악학교였는데 지루한 수업을 견디지 못해 학교를 그만뒀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시내 한 쪽에는 1882년 로시니의 유산으로 세운 로시니 음악학교(Conservatorio di Musica)도 있다.

◎이탈리아 여러 지역이 자랑할 만한 와인을 가지고 있듯 마르케 역시 마찬가지다. 특히 마르케 주 예시라는 중세 도시에서 생산되는 베르디키오(Verdicchio)는 고대 로마 시대부터 재배했다는 청포도 품종으로 적당한 산미와 농익은 사과향이 멋지게 어우러진 와인이다. 상큼하고 향기로운 향이 일품. 탈리아텔레도 맛보자. 이탈리아 가정식으로 우리나라 칼국수처럼 납작한 면으로 만든 파스타의 한 종류다. 밀가루에 달걀을 넣은 반죽이 병아리색을 띤다. 면이 유난히 쫄깃쫄깃한데 함께 넣은 조개, 새우 등의 해산물이 파스타의 풍미를 한껏 올려 준다.

체코 프라하
블타바 강을 따라 흐르는 스메타나의 선율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불리는 프라하는 보헤미아 왕국의 천년 역사를 간직한 도시다. 지금의 체코 서쪽 지방으로 흔히 우리가 ‘보헤미안’이라고 부르는 자유분방한 방랑자들이 보헤미아에서 비롯됐다. 보헤미안들은 오스트리아에 300년 넘게 지배를 받으면서도 자신들만의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이들은 특히 음악과 춤을 좋아해 자신들이 받은 핍박과 슬픔을 특유의 음악으로 표현했다. 이 보헤미아의 감성을 세계에 널리 퍼뜨린 작곡가가 ‘체코 국민음악의 아버지’라 불리는 스메타나(Bedrich Smetana·1824~1884)다.

보헤미아의 작은 도시에서 태어난 스메타나는 1848년 30년 전쟁의 종전과 프랑스 파리 2월 혁명의 영향으로 민족주의에 눈뜨기 시작했고 또래의 학생들과 함께 거리로 나서 카를교에 바리케이드를 치는 일에 가담하기도 했다. 유럽의 음악 황제로 불리는 리스트로부터 극찬을 받던 그는 당국의 감시 대상이 돼 결국 스웨덴 예테보리에서 도피생활을 해야만 했다.

1861년 조국으로 돌아온 그는 민족주의 색채가 강한 음악을 만들기 시작한다. 보헤미아의 전설과 아름다운 자연을 노래한 교향시 ‘나의 조국’은 그가 남긴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힌다. 아침 해뜰 무렵 카를교에서 프라하를 유유히 가로지르는 블타바 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나의 조국’ 2악장 ‘블타바’가 절로 연상된다. 스메타나가 교향시 ‘나의 조국’을 작곡한 것은 그의 나이 50세 때였다. 이때부터 청력을 상실한 ‘블타바’를 작곡할 때엔 청력을 완전히 상실한 상태였다고 한다.

카를교와 가까운 시민회관은 국제 음악제 ‘프라하의 봄’의 개막 연주회가 열리는 곳으로 체코 독립을 외치던 시민들이 직접 돈을 모으고 벽돌을 져나르며 건립했다. 이곳에서는 1년 내내 클래식 연주회가 열리니 한 번쯤 들러 프라하의 선율에 젖어보는 것도 좋을 듯싶다.

◎프라하에서 가까운 플젠은 체코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맥주인 필스너 우르켈을 생산하는 곳이자 주당들에게는 ‘맥주의 성지’로 불리는 곳이다. 이곳에 들어선 우르켈 공장은 53개국으로 수출되는 필스너 우르켈의 실제 공장이자, 맥주 양조 과정을 관람할 수 있는 뮤지엄을 겸하고 있다. 체코의 대표적인 전통 음식은 콜레뇨인데, 돼지를 하루 동안 맥주에 재워서 숙성시킨 뒤 오븐에서 구워 바삭하게 만든 음식으로 족발과 맛이 비슷하다. 우르켈 공장 지하에 있는 식당에서 신선한 맥주와 함께 맛보는 것도 좋다.

크로아티아 모토분
미야자키 하야오가 사랑한 마을

크로아티아 북서부의 이스트라(Istra) 지방은 국내 여행자들에게는 미지의 지역으로 남아 있다. 중세도시가 여러 곳 남아있는 이 지역에는 모토분이라는 작은 마을이 있다.

마을은 멀리서 보면 공중에 지은 성 같다. 까마득한 절벽 꼭대기에 자리 잡은 탓에 공중에 떠 있는 섬처럼 보인다. 모토분은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 ‘천공의 성 라퓨타’의 모델이 된 마을이라고 한다.

마을은 아담하다. 천천히 걸어서 2시간이면 다 돌아볼 수 있을 정도다. 마을 인구는 1500명 정도. 오래된 벽돌 건물 사이로 좁고 가파른 골목길이 구불구불 이어진다. 그리고 이 좁은 골목을 옛날 자동차들이 부르릉거리며 돌아다닌다. 마을 아래로는 드넓은 포도밭과 올리브밭이 펼쳐진다.

모토분뿐만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다른 도시들도 미야자키 하야오가 만든 애니메이션의 무대가 됐다. ‘빨간 돼지’ ‘미래소년 코난’ ‘마녀배달부 키키’ 등 그의 여러 작품에 크로아티아 풍경이 투영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작품에 등장하는 붉은 지붕 건물과 푸른 바다는 전부 크로아티아 도시와 아드리아해에서 영감을 받은 것들이다.

◎모토분은 푸아그라, 캐비아와 함께 세계 3대 진미 가운데 하나로 손꼽히는 송로버섯으로 유명하다. ‘식탁 위의 다이아몬드’ ‘요정들의 사과’ 등의 애だ막?불리는 송로버섯은 뛰어난 맛과 향으로 미식가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값이 비싼 까닭에 송로버섯을 말린 후 이를 갈아 파스타나 올리브유, 스프 등 각종 음식에 넣는다. 조금만 음식에 넣어도 “아, 송로버섯 들어갔네” 라고 할 정도로 맛과 향이 뛰어나다.

글·사진 최갑수 여행작가 ssoochoi@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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