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일자리 사업, 실업자 재취업 돕는 역할해야

입력 2016-09-12 17:46  

산업 예측, 인력 계획·훈련해온 정부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되레 장애물
경제환경 조성 역할에 충실해야

윤희숙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올 상반기 정부와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5개 부처 196개 일자리 사업 전면재편을 위해 심층적인 평가를 했다. 25개 부처에서 15조8000억원이라는 막대한 재정을 투입하면서도 피부로 느끼는 취업상황이 개선되지 않아 효과를 점검해 보자는, 간단하면서도 명확한 동기였다.

그런데 평가 과정에서 부상한 것은 개별 사업의 효과보다 일자리 사업의 목표가 제대로 공유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점이었다. 목표가 무엇인지 모른다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알 수 없으며 현재 무엇이 문제인지를 아는 것은 더 어렵다. 더 의미심장한 것은 일자리 사업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변화하는 경제환경 속에서 정부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점이다.

다양한 부처에 196개 사업으로 분포된 우리나라 일자리 사업은 외환위기 직후인 1998년 실업대란으로 시작됐다. 안전망이 갖춰져 있지 못한 상태에서 발생한 초유의 대량실업 속에서 실업급여와 직접일자리 사업, 고용서비스 등 각종 프로그램이 급속도로 확대됐다.

실제로는 더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 후반 한국 경제가 비약하기 시작했을 때부터 일자리 사업은 핵심적인 기여를 했다. 우수한 인적자원이 한국 경제 최대 자산이었다고들 하지만, 상급학교에 진학하지 못한 많은 청소년에게 직업훈련을 제공해 산업화의 역군으로 양성한 것은 개발연대 당시 집중적 노력의 결실이었다. 공공직업훈련원을 세워 무료 훈련을 제공하고, 기업에 의무적으로 훈련을 제공하거나 분담금을 내도록 강제해 직업훈련이 빨리 자리잡게 했다. 이런 1960년대 식 일자리 사업은 이후 성장과 분배, 두 마리 토끼를 잡는 데 혁혁한 기여를 했다.

당시 정부의 가장 중요한 기능은 산업 발전방향을 예측 내지 설계하고 인력수급을 계획해 훈련을 기획·통제하는 것이었다. 흔히 정부는 선수가 아니라 심판이 돼야 한다고 하지만 개발연대 시대의 정부는 감독이었고, 주전이었으며 구단주였다. 이런 관행은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기업이 망하고 일자리가 없어지는 것을 우려해 각종 장려금을 영세기업에 나눠주면서 일자리를 지켜냈다고 자위하고, 미래에 유용하게 쓰일 ‘숙련’을 예측해 지원하며 훈련물량과 가격을 통제하고 있다.

문제는 과거에 주효하던 전략이 더 이상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시대에는 개인의 창발성과 상호간 자발적 융합이 핵심 동력이 될 것이며, 그런 움직임을 정부가 주도하거나 통제한다는 것은 가능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 더구나 그간의 구조조정 지연으로 과잉설비의 부담을 잔뜩 짊어진 지금 우리 경제에서 과거 업무 관행은 오히려 큰 장애물이다. 경제의 신진대사를 촉진해 활력을 복원하기 위해서는 경쟁력을 잃은 기업이 퇴출해 실업이 발생하는 것을 애써 막거나 민간의 경제활동을 정부가 계획하고 가르치려 드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정부가 감독이자 주전이던 시대가 지나가고 있는 것이다.

대신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생계와 훈련을 보장하고 노동시장에 재진입하도록 북돋는 역할은 훨씬 더 강조돼야 한다. 기업과 근로자들이 걱정없이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불필요한 위험을 줄이고 경제활동을 잘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정부가 변화와 불확실성의 시대를 헤쳐나갈 수 있게 하는 길잡이이다.

오랫동안 축적된 업무관행이 일시에 변하기는 어려우며, 정부 사업의 방향을 전환하기 위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지난달 31일 발표된 일자리사업 개편안은 이런 방향의식을 상당히 담아냈다. 우리가 해결해야 할 과제가 압도적이듯 일자리 사업의 쇄신, 나아가 정부 쇄신의 과제 역시 근본적이어야 한다.

윤희숙 <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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