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
[ 뉴욕=이심기 기자 ] 한진해운 소속 마이애미호는 12일(현지시간)에도 미국 뉴욕항에 배를 대지 못했다. 9일 뉴저지주 파산법원이 한진해운 선박과 화물에 대해 ‘스테이 오더(압류 금지)’ 결정을 내렸지만 마이애미호는 며칠째 뉴욕과 버지니아 해안을 오르내리며 입항하지 못하고 있다. 법원의 결정은 로스앤젤레스(LA)와 롱비치항에 있는 컨테이너선 4척만 해당하기 때문이다.
마이애미호에는 한국의 G사가 수출한 화장품 10만달러어치가 실려있다. 미국 추수감사절과 연말 성수기에 판매할 제품이다. 이 회사는 지난 6월 뉴욕 맨해튼에 판매 1호점을 열었다. 미국의 ‘K뷰티’ 인기를 노리고 시작한 첫 해외사업이다.
지난 9일 롱비치항에 내린 수출화물도 묶여 있기는 마찬가지다. 밀린 운임을 내지 않으면 한진해운의 짐을 옮기지 않겠다며 철도와 트럭회사들이 운송을 거부하고 있다. 수출기업 L사 관계자는 “바다가 아닌 육상이라는 차이만 있을 뿐”이라며 “납기를 畸?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6일 뉴저지 파산법원에서 열린 한진해운 공청회에서 휴렛팩커드(HP)는 142개 컨테이너가 해상에 묶여 있다며 빨리 파산보호 승인을 내려달라고 요청했다. 일본 야마하도 1억5000만달러어치의 화물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진에 빨리 해결 방안을 제시하라고 호소했다.
화주인 수출기업들의 불만은 말 그대로 폭발 직전이다. 최근 열린 기업간담회에서 “수십년간 일궈온 수출 일선이 세계 10위권 무역대국의 대외신인도와 함께 무너지고 있다”는 탄식이 곳곳에서 터져나왔다.
한진해운과 채권단 싸움에 기업들만 볼모로 잡혀 있다는 불만과 정부도 대책회의라는 이름으로 탁상공론만 하고 있다는 비난이 쏟아졌다. 이러다간 수입업체의 클레임과 중소 포워딩·통관서비스 업체의 줄도산으로 이어지면서 국제소송이 잇따를 것이라는 전망도 커지고 있다.
수출 현장에서 만난 기업인 대부분은 지금이라도 한진해운을 살리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주주와 경영진에 대한 책임과는 별개로 50년간 쌓아온 글로벌 인프라와 네트워크, 노하우를 버리는 것은 최악의 선택이라고 지적했다.
한 종합상사 관계자는 “수출은 전쟁”이라며 “외국계 선사에 휘둘리면서 기업들의 수출 경쟁력이 유지될 수 없다”고 말했다. 한국이 온전한 무역대국으로 남으려면 항공과 해상에서 독자적인 운송망을 보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물건을 잘 만드는 것 못지않게 제때 보내는 것도 중요하다는 설명이다.
뉴욕항 화물터미널에서 관세사로 일하는 A씨는 “한진해운 수준의 글로벌 운송회사를 다시 세우려면 수십년이 걸릴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이심기 뉴욕 특파원 sglee@hankyung.com
관련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