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스턴=이심기 기자 ]
황창규 KT 회장은 “미래는 예측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하는 것”이라는 말로 45분간의 강연을 마무리했다. 강연이 끝나자 800여명의 하버드대 학생들이 기립 박수로 환호했다.
황 회장은 20일(현지시간) 미국 보스턴 하버드대 메모리얼홀에서 ‘네트워크의 힘’을 주제로 특별 강연을 했다. 이날 강연은 KT가 추진하는 ‘기가(GiGA) 토피아’ 전략이 하버드경영대학원(HBS)의 사례 연구로 채택되기에 앞서 특별 초청 형식으로 이뤄졌다.
황 회장은 2005년에도 하버드대에서 강연했다. 당시 그는 삼성전자 사장으로 메모리반도체 사업을 담당했다. 주제는 자신의 이름을 딴 ‘황의 법칙(Hwang’s law)’이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1년에 두 배씩 늘어난다는 황의 법칙은 그를 글로벌 최고경영자(CEO) 반열에 올렸다.
11년 만에 하버드대 강단에 다시 선 황 회장은 “스마트폰 하나가 과거에 비하면 슈퍼컴퓨터와 맞먹는 데이터 처리 용량을 갖고 있다”며 여전히 황의 법칙은 유효하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이어 20년간 몸담았던 반도체 업계를 떠나 통신 분야에서 자신이 수립하려는 새로운 비전을 소개하면서 “구글을 넘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황 회장은 “KT는 2014년 초당 1기가비트(Gbps) 속도의 인터넷 서비스를 시작했고 2020년에는 이보다 10배 빠른 10기가 지능형 네트워크를 구축할 계획”이라며 “지능형 네트워크가 수십억개 단말과 연결되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고 4차 산업혁명 등 산업의 패러다임을 바꾸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통신망 자체로 다양한 융합 서비스를 제공하는 지능형 네트워크 사업을 통해 세계 최대 인터넷 기업인 구글보다 뛰어난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설명이다.
예를 들어 구글이 제공하는 위치확인 정보는 야외에서 오차 범위가 10~30피트(3~9m)지만 실내에선 100피트(30m)에 달한다며 지진 등 재난 상황에서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반면 와이파이와 롱텀에볼루션(LTE), 비콘 등을 활용한 KT의 ‘기가 지오펜싱(GiGA Geo-fencing)’ 기술을 적용하면 실내에서도 오차 범위 1피트(30㎝)에서 위치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2차원의 평면적 정보를 제공하는 구글과는 차원이 다르다고 강조했다. 또 해상에서도 선박용 중계기 없이도 LTE 커버리지를 최대 120마일(200㎞)까지 확대하고 사물인터넷 장치가 부착된 구명재킷을 입으면 조난자 위치와 심장 박동 수까지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고 소개했다.
황 회장은 ‘기가 인터넷’의 속도를 활용한 지능형 네트워크를 통해 초고화질(UHD)급 콘텐츠와 가상현실, 무인자동차, 홀로그램 서비스를 이용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안전감시, 빅데이터, 보안 등 새로운 비즈니스 기회를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 통신사업자들이 부가가치가 없는 통신망만 제공하면서 ‘덤 파이프(깡통망·Dumb Pipe)’로 불리고 있지만 KT는 속도를 획기적으로 높인 기가 인터넷을 통해 새로운 사업 기회를 찾을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날 행사는 하버드대에서도 전례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파격적이었다. 강연장인 메모리얼홀은 380년 하버드대의 역사를 상징하는 곳으로, 남북전쟁에 참전했다가 숨진 하버드 학생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졌다. 이곳에서 강연을 한 외부 인사는 윈스턴 처칠 전 영국 총리와 미하일 고르바초프 전 옛 소련 대통령, 마틴 루터킹 목사 등 손으로 꼽을 정도다. 아시아 CEO 중에서는 황 회장이 처음이다.
이날 강연은 셰인 그린스타인 HBS 종신 교수의 사회로 이뤄졌다. HBS 사례 연구로 등재된다고 해서 모두 이 같은 예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대개는 40명 정도가 들어가는 강의실을 배정받는 게 전부다. 네트워크와 콘텐츠·플랫폼 동반 혁신 전략인 KT의 기가토피아는 내년부터 HBS 교육과정 중 ‘디지털 혁신과 변화’ 과목의 수업교재로 활용된다.
보스턴=이심기 특파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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