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대정부 질문 '무용론'] 비자금 폭로 등 과거엔 '정부 비판 통로'…최근엔 여야 '정쟁의 장' 전락

입력 2016-09-23 17:28  

시시해진 대정부 질문

정책 결정 과정 투명해지고 언론자유로 폭로 대상 줄어



[ 김채연 기자 ] 대정부 질문은 1948년 제헌 국회에서 도입됐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대정부 질문이 야당 의원들이 면책 특권을 이용해 정권의 각종 비리 등을 폭로하는 해방구 역할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대정부 질문이 발단이 됐다. 1995년 10월 당시 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이던 박계동 전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단서를 폭로했다. 이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고, 그해 11월 노 전 대통령은 구속 수감됐다.

1982년 10월에는 민한당 초선 의원이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 위원장이 대정부 질문에서 ‘김대중 선생 석방과 광주 민주화운동 재조사’를 요구했다. 당시는 전두환 정부 초기로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한 위원장이 사전 예고 없이 초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신문엔 자세한 내용은 빠진 채 “한 의원이 정치 현안에 대해 질의했다”고만 보도됐으나 한 의원의 발언은 입소문을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다.

국회 오물 투척 사건도 대정부 질문 도중 일어났다. 1966년 김두한 무소속 의원은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대량 밀수한 사건에 대한 질문을 하던 도중 미?준비해간 오물을 본회의장에 투척했다.

1975년 김옥선 신민당 의원은 박정희 정부를 스탈린, 히틀러 등의 독재체제에 빗대며 강력 비판했다. 이 사건이 문제가 돼 김 의원은 자진 사퇴했다. 1986년엔 유성환 신한민주당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 앞서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는 내용의 원고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구속됐다.

이처럼 대정부 질문은 한국 정치사에 그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책 결정 과정이 투명해지고 언론 자유가 확보되면서 대정부 질문의 유용성이 약해지며 이념 공세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화가 이뤄진 지금은 대정부 질문의 필요성이 덜해졌다”며 “선진국처럼 대정부 질문을 없애고 상임위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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