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책 결정 과정 투명해지고 언론자유로 폭로 대상 줄어
[ 김채연 기자 ] 대정부 질문은 1948년 제헌 국회에서 도입됐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에는 대정부 질문이 야당 의원들이 면책 특권을 이용해 정권의 각종 비리 등을 폭로하는 해방구 역할을 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의 비자금 사건은 대정부 질문이 발단이 됐다. 1995년 10월 당시 민주당 소속 초선 의원이던 박계동 전 의원은 대정부 질문에서 노 전 대통령의 비자금 단서를 폭로했다. 이 발언은 엄청난 파장을 몰고 왔고, 그해 11월 노 전 대통령은 구속 수감됐다.
1982년 10월에는 민한당 초선 의원이던 한광옥 국민대통합위 위원장이 대정부 질문에서 ‘김대중 선생 석방과 광주 민주화운동 재조사’를 요구했다. 당시는 전두환 정부 초기로 서슬 퍼런 군사독재 시절에 한 위원장이 사전 예고 없이 초강경 발언을 쏟아낸 것이다. 신문엔 자세한 내용은 빠진 채 “한 의원이 정치 현안에 대해 질의했다”고만 보도됐으나 한 의원의 발언은 입소문을 타고 급속히 퍼져나갔다.
국회 오물 투척 사건도 대정부 질문 도중 일어났다. 1966년 김두한 무소속 의원은 삼성 계열사인 한국비료가 사카린을 대량 밀수한 사건에 대한 질문을 하던 도중 미 ?준비해간 오물을 본회의장에 투척했다.
1975년 김옥선 신민당 의원은 박정희 정부를 스탈린, 히틀러 등의 독재체제에 빗대며 강력 비판했다. 이 사건이 문제가 돼 김 의원은 자진 사퇴했다. 1986년엔 유성환 신한민주당 의원이 대정부 질문에 앞서 “대한민국의 국시는 반공이 아니라 통일”이라는 내용의 원고를 기자들에게 배포했다가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돼 구속됐다.
이처럼 대정부 질문은 한국 정치사에 그 나름의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주화 이후 정책 결정 과정이 투명해지고 언론 자유가 확보되면서 대정부 질문의 유용성이 약해지며 이념 공세의 장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민주화가 이뤄진 지금은 대정부 질문의 필요성이 덜해졌다”며 “선진국처럼 대정부 질문을 없애고 상임위 활동을 강화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김채연 기자 why29@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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