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원들에게 노조설립 권유
'투명경영'으로 무분규 이끌어
[ 강영연 기자 ] 1985년 한 방송 프로그램에서 더러운 환경에서 간장을 불법으로 만드는 현장을 방영했다. 무허가 제조 현장을 고발한 프로그램이었다. 아무 관계가 없었지만 간장 시장 1위 샘표의 매출도 추락했다. 소비자들이 간장 구입 자체를 꺼렸다. 박승복 샘표 회장은 결단을 내렸다. 정직하게 제품을 만들었으니 정면승부로 일을 해결하자고 했다. 박 회장은 TV 광고에 직접 출연했다. 그는 “샘표는 안전합니다. 마음놓고 드십시오, 주부님들의 공장 견학을 환영합니다”라고 말했다.
말에 그치지 않았다. 식품업계 최초로 공장 견학 프로그램을 운영했다. 깨끗한 환경에서 좋은 재료로 간장을 만든다는 것을 소비자에게 직접 보여줬다. 당시 식품업체들은 제조 현장을 절대 공개하지 않았다. 영업비밀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박 회장의 결정은 식품업계의 금기를 깨는 것이었다. 그가 직접 한 해명과 공장 견학 프로그램은 성공적이었다. 샘표의 간장 매출은 회복됐다.
원리원칙을 바탕으로 샘표간장을 ‘국민 브랜드’로 성 壤쳔?박승복 샘표 회장이 지난 23일 노환으로 별세했다. 향년 95세.
박 회장은 샘표식품 창업주인 박규회 회장의 장남으로 1922년 함경남도 함주에서 태어났다. 함흥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하고 한국식산은행(현 산업은행)에서 25년간 근무했다. 1965년부터 재무부 기획관리실장, 국무총리 정무비서관, 초대 국무총리 행정조정실장 등을 지냈다. 주민등록번호 제도 도입, 소양강댐 준공, 세종문화회관 설립 등 1960~1970년대 정부의 주요 업무를 추진했다.
공직생활을 끝내고 55세의 늦은 나이에 아버지의 뒤를 이어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했다. 회사 경영에서 그는 ‘품질과 원칙’을 강조했다.
고인은 ‘내 식구들이 먹지 못하는 음식은 만들지도 말라’라는 창업주의 가르침을 이어받아 품질 중심의 경영을 했다. 세계 최고 품질의 간장을 만들겠다는 목표로 1987년에는 단일 품목으로는 세계 최대 규모의 간장 공장을 짓기도 했다.
매일 하루 세 번 식후에 식초를 마시는 건강법을 설파하고 다녀 ‘식초전도사’라는 별칭도 얻었다. 마시는 식초 시장도 개척했다. 누구나 쉽게 일상에서 식초를 마실 수 있도록 흑초 음료 ‘백년동안’을 개발했다.
그는 직원들과의 신뢰도 중요하게 생각했다. 샘표식품 사장으로 취임한 뒤에는 특별한 약속이 없으면 매일 구내식당에서 직원들과 함께 밥을 먹으며 대화했다. 분기마다 전 직원 앞에서 회사 경영현황도 설명했다. 직원들에게 노조 설립을 권유한 것도 유명한 일화다. 직원들의 경조사나 병문안도 직접 챙겼다. 이렇게 쌓은 신뢰가 바탕이 돼 샘표는 지금까지 단 한 차례의 노사분규도 없었다.
개인적인 삶은 검소했다. 근검절약을 강조해 달력 뒷면과 이면지를 활용해 메모지로 썼다. 타고 다니던 10년 된 자동차는 장남인 박진선 샘표식품 사장에게 물려줘 40만㎞를 타고서야 바꾸도록 한 것도 잘 알려진 이야기다.
식품산업 발전을 위해 다양한 사회활동도 했다. 한국상장회사협의회 회장으로 19년간 일하며 투명경영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을 마련하는 데 힘썼다. 한국식품공업협회 회장으로 10여년간 일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금탑산업훈장, 국민훈장 목련장 등을 받았다.
박 회장은 1997년부터 대표이사직을 박 사장에게 넘기고 경영 일선에서 물러났다. 유족으로는 아들 박 사장과 유선씨, 딸 혜선, 영선, 정선씨가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이다. 발인은 27일 오전 7시.
강영연 기자 yy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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