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톡스 원료인 '독소' 관리, 정부는 손 놨다

입력 2016-09-28 18:04  

1g으로 100만명 죽을 수 있는 맹독인데…

휴젤은 썩은 통조림서 대웅제약은 땅에서 균 발견
정부 현장조사 한번 없어…미국은 부처 4개 이상서 관리



[ 조미현 기자 ] 보톡스의 재료가 되는 ‘보툴리눔 독소’의 균주 관리가 허술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부는 민간 기업이 땅이나 통조림 등에서 보툴리눔 독소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도 조사에 나가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맹독으로 분류되는 보툴리눔 독소 균주 관리에 대한 신뢰성에 문제가 생기면 국민 안전은 물론 세계에서 가장 많은 보톡스를 상용화한 한국의 바이오산업 경쟁력에도 타격을 받을 것이란 분석이다.

◆신고서만 받고 끝

28일 기동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는 보톡스를 개발한 대웅제약과 휴젤이 각각 2010년과 2009년 국내에서 보툴리눔 독소 균주를 발견했다는 신고를 받고도 역학 조사를 나가지 않았다. 보툴리눔 독소는 1g으로 100만명을 살상할 정도여서 생화학 무기로 활용될 수 있다.

대웅제약은 2010년 7월 질병관리본恝?제출한 신고서에서 2006년 토양에서 보툴리눔 균을 채취했다고 밝혔다. 휴젤은 2002년 썩은 통조림에서 보툴리눔 독소를 분리했다고 보고했다. 하지만 두 회사 모두 구체적인 장소와 제품을 명시하지 않았다. 질병관리본부는 “보툴리눔 독소에 감염된 환자 보고가 없었기 때문에 감염병 예방법에 따라 역학 조사를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미국에서는 범부처 관리

전문가들은 국내 토양이나 시중에 유통된 통조림에서 균을 채취했다면 감염병이 퍼질 수 있다고 보고 선제적인 조사를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감염병 예방법 18조에 따르면 ‘질병관리본부장 등은 감염병이 발생해 유행할 우려가 있다고 인정하면 지체 없이 역학 조사를 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휴젤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 제출한 자료에서 국내 여러 지역에 있는 소매점과 식품유통업체로부터 각종 통조림 등 식품을 수거해 균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기 의원은 “이 같은 내용이 사실이라면 질병관리본부는 물론 식품 안전을 담당하는 식약처도 관리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비판했다.

미국에서는 보툴리눔 균을 안보를 위협할 수 있는 고위험 병원균으로 보고 엄격히 관리하고 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보건복지부, 법무부, 농무부 등 범부처 차원에서 관리한다. CDC는 보툴리눔 감염 전파가 의심되면 지체 없이 조사한다.

◆보톡스 개발업체 난립

한국은 보톡스 강국으로 꼽힌다. 전 세계에서 판매되고 있는 7개 보톡스 중 3개가 한국 기업이 상용화한 것이다. 일각에서는 보툴리눔 독소 균주 관리가 허술한 탓에 한국에 보톡스 개발업체가 많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LCD(액정표시장치) 장비업체나 건설사까지 보톡스를 개발하겠다고 선언한 상황이기 때문이다. 오병하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보툴리눔 독소 균주를 확보하는 일이 매우 어려운데 개발에 나선 기업이 많은 것은 이례적인 일”이라고 했다.

서구일 서울대병원 피부과 교수는 “보톡스 제품이 한국에서 많이 개발된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라면서도 “균주가 국가 통제하에 관리되고 있는지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보툴리눔 독소

botulinum toxin. 클로스트리디움 보툴리눔이란 박테리아에서 분비되는 독소. 흔히 보톡스로 불리는 보툴리눔 독소 제제의 재료가 된다. 보툴리눔 독소는 A~G형까지 있는데 A형과 B형만이 미용 시술과 치료에 사용된다. 소량으로도 수백만명을 살상할 수 있어 대부분 나라에서 고위험 병원균으로 엄격하게 관리한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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