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익 악화 속 자본비율 나빠져…미국 15조원 '벌금 폭탄' 결정타
주가 올 들어 반토막 '사상 최저'
자회사 매각 등 자구책 마련에도 자본금 부족땐 정부 지원 불가피
[ 이상은 기자 ] 독일 최대 은행으로 146년의 역사를 지닌 도이치뱅크발(發) 금융위기 우려가 좀체 잦아들지 않고 있다. 독일 주간지 디차이트는 28일(현지시간) 정부가 구제금융에 나서 이 은행 지분 25%까지 돈을 넣을 수 있다고 보도했다. 독일 정부와 도이치뱅크는 곧바로 부인했으나 투자자들은 설득되지 않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6월 말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은행으로 도이치뱅크를 지목한 데다 미국 정부가 글로벌 금융위기 전 판매한 주택담보대출 유동화증권(MBS)의 불완전 판매를 빌미로 140억달러(약 15조5000억원) 벌금을 매긴 것이 결정타가 됐다.
◆낮은 자본비율
도이치뱅크 주가는 올 들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2월에는 코코본드(후순위 전환사채) 이자를 갚지 못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면서 폭락했고, 6월 말에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브렉시트) 결정으로 헤지펀드업계 대부 조지 소로스가 대량의 도이치뱅크 주식을 공매도했다. 미국의 벌금 부과 문제가 불거지고 구제금융 가능성이 부각된 이달 들어서만 20% 더 빠졌다. 지난 27일에는 사상 최저치(주당 10.2유로)를 찍었다. 제프리 군드라크 더블라인캐피털 대표는 “도이치뱅크 주가가 한 자릿수(10유로 아래)로 떨어지면 투자자들은 패닉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현재 바젤Ⅲ 기준 도이치뱅크의 보통주 티어(Tier) 1 자본비율은 10.8%다. 씨티그룹(12.54%), JP모간체이스(11.90%), 바클레이즈(11.60%), BNP파리바(11.10%) 등보다 낮다. 게다가 수익성이 낮아 자본비율을 올리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이날 자회사인 애비생명보험을 영국 피닉스그룹에 9억3500만파운드(약 1조3000억원)에 팔기로 하면서 자본비율이 0.1%포인트 상승하겠지만 이런 식으로는 2018년 목표로 한 12.5%를 달성하기가 쉽지 않다.
이런 가운데 미국에서 부과하는 벌금까지 내면 자본비율이 국제기준 아래로 떨어질 수 있다. 그러면 외부에서 자본금을 투입(구제금융)해야 하는데, 앞서 문제가 된 이탈리아 은행들에서는 구제금융이 쉽지 않았다. 구제금융을 하려면 기존 채권자와 주주 등이 손실을 분담(bail-in)해야 하는데 정치적 부담이 크다. 존 크라이언 최고경영자(CEO)가 “벌금 140억달러를 다 낼 필요는 없고 그중 일부만 낼 것이며, 증자가 필요할 정도로 자본금이 부족하지 않다”고 강조한 배경이다.
◆높은 파생상품 비중
시장이 도이치뱅크의 또 다른 위험 요인으로 꼽는 것은 지나치게 높은 파생상품 비중이다. 노무라증권이 이날 내놓은 보고서에 따르면 도이치뱅크 등 독일 은행의 해외 파생상품 익스포저 규모는 8810억달러로 미국(3800억달러), 영국(7130억달러) 등보다 훨씬 크다.
포천지가 국제결제은행(BIS) 집계를 인용한 보도에 따르면 도이치뱅크의 파생상품 관련 계약 규모는 한때 75조달러에 달했다. 작년 말에는 46조달러(전 세계의 12%)로 줄었지만 여전히 세계 최고 수준이다. 다만 이런 파생상품은 서로 헤지되는 경우가 많아 실제 영향은 천문학적인 숫자에 비하면 크지 않다고 포천지는 전했다. 그래도 다른 은행과 비교하면 작지 않은 비중이다. 외부 충격이 왔을 때 재무건전성이 급격히 나빠질 수 있는 요소다.
◆쪼그라드는 예대마진
유럽중앙은행(ECB)이 2014년 도입한 마이너스 금리(예치금 금리) 체제는 수익성을 더 악화시켰다.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돈에 대해선 이자를 받기는커녕 보관료(연 0.4%)를 내야 하는 처지고, 예금 인출 우려로 비용을 일반 소비자에게 전가하지 못하고 있다. 초저금리가 장기화하면서 예대마진이 계속 줄었다. 지난 2분기 순익은 전년 동기 대비 98% 감소한 2000만달러에 불과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는 28일 베를린 연방하원의원들과 연 비공개 회담에서 독일 정치인들에게 집중포화를 당하자 “ECB가 독일 금융시스템 문제의 원인은 아니다”고 방어했다.
◆코메르츠방크 합병 등 검토
도이치뱅크는 나름대로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애비생명보험을 매각하기로 했고 미리 분할해둔 포스트뱅크에 대해선 “내일이라도 팔 수 있다”고 크라이언 CEO는 말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금이 부족하면 독일 정부가 나설 가능성이 가장 높다. 안드레아 엔리아 유럽금융감독청(EBA) 회장은 “이탈리아 은행에서는 채권자의 손실분담 문제로 홍역을 겪고 있지만 금융 시스템이 위기에 처하는 상황에서는 정부가 직접 돈을 넣는 구제금융을 할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정부가 지분을 보유한 코메르츠방크와의 합병설도 끊임없이 나오고 있다. 지난 8월에는 두 은행이 합병을 검토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합병만으로 재무구조가 개선되지는 않으며 자본 투입이나 부실자산 매각 등이 뒤따라야 할 전망이다.
이상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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